다시 찾은 5월의 아름다움
다시 찾은 5월의 아름다움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5.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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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선도산(해발 547.2m) 산길을 걸으며 새삼 모든 것이 새롭다고 느꼈다. 병아리 난초가 꽃망울을 맺고 있고, 은방울꽃이 커다란 잎사귀 아래 송알송알 꽃잎 터트리는 모습이 소박하다.

참나무 군락을 지나는 봄바람은 싱그럽고, 가끔 인기척에 놀라 울창한 숲속을 뛰어 달아나는 노루와 고라니, 산토끼까지 산짐승과 만나는 놀람도 기쁨이다. 모든 신록의 빛깔이 산뜻하고, 인간 세상과 섞이지 않은 숲 내움은 신선하다.

눈과 코, 입과 귀는 물론 살갗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명랑하기 그지없는 5월을 만끽할 수 있는 까닭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생긴 커다란 희망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망의 설렘으로 인해 푸른 5월의 아름다움을 다시 찾은 기분이다.

우리의 5월은 참 사연이 많다. 찢기고 빼앗기며 절망과 한숨에 젖어 푸른 신록과 맑은 하늘을 바라보기 힘들었던 세월. 그 모진 고통의 시간을 떨쳐내고 5월 10일 이후 불과 며칠 만에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비로소 5월을 되찾는 기쁨을 조심스럽게 만끽하고 있다.

선도산 산길을 걸으며 오래 전 국어시간에 배웠던 이양하의 <신록예찬>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1980년대를 지나 2010년대에 이르는 짧지 않은 세월을 거치면서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과 기억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사람이란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양하 신록예찬 中>

`어린애의 웃음같이 명랑한 5월의 하늘'을 찬양한 수필가 이양하는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라고 다짐한다.

결국 사람이다. 5월 하늘을 피로 물들인 5.18도 그렇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운명이다.'를 남기고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러움도 모두 다 사람으로 인해 사람을 향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서러움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다. 대통령이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을 기다려 주며 모순의 장벽을 걷어내려 노력하는 벅찬 시작은 모든 것을 `정상'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일 뿐, 유난히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뉴스를 찾아보게 만드는 기쁨과 매일 매일 새로워지고 나날이 속 시원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푸르른 5월을 되돌려 받았으며, 그날 2017년 5월 10일 이후 사람들의 눈빛은 맑고 영롱해졌다.

원래부터 있어 왔던 5월의 생생한 기운을 드디어 마음껏 받아들이고 호흡하게 됐으며, 그렇게 받은 기운으로 사람들은 한결 너그러워지고, 또 제 스스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렇게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토록 한꺼번에 찾아온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사는 세상을 두고 쥐나 닭이 아닌 사람을 뽑았기 때문이라는 입방정마저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불안이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은 여전히 진정한 반성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 안의 적폐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상'의 상태를 찾아가는 길을 외면하거나 에둘러 줄타기하면서 아닌 척 하지 말라. 신록과 5월의 맑은 하늘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당연하다. 권력도 자본도 언론도, 우리 안의 파시즘도 더 이상 숨지 말라. 푸른 5월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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