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몰락하는가
보수는 몰락하는가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7.05.2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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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편집위원>

5·9 장미대선은 문재인을 위한 문재인의 선거였다.

누가, 어느 정당이 2등을 하느냐가 관심사가 될 정도로 그의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박근혜정권의 국정농단이 불러온 예고된 승리였고, 촛불혁명의 최대수혜자로 기능 했으니 어찌 아니 그러랴.

덕분에 진보진영은 염원하던 대권을 9년 만에 다시 잡는 쾌거를 이룩했고, 보수진영은 대선사상 유례없는 표 차이로 참패해 망신살이 뻗쳤다.

기득권에 안주하던 보수는 사분오열했고 지리멸렬했다.

차떼기 정당으로 낙인찍혀 나락으로 떨어진 당을 구해냈던 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그때보다도 더 처참하게 소속 당을 말아먹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문재인의 승리와 진보진영의 승리는 자가발전에 의한 승리라기보다는 박근혜의 실정과 보수진영의 패착에 대한 응징의 승리였다. 시쳇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선거를 한 셈이다.

그런 가운데 보수를 자처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4.1%라는 지지를 받은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준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보수의 본산을 살려야 한다는 골수 보수들의 표심과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진보진영의 독주와 독선을 견제하는 세력은 있어야 한다는 표심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은 없다.

영남으로 대별되는 동쪽지역의 보수지향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과 호남으로 대별되는 서쪽지역의 진보지향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이 있을 뿐이다. 이번 장미대선에 중간지대를 표방하는 제3의 정치세력(국민의당)이 의미 있는 실험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보수와 진보는 역사와 사회를 이끄는 쌍두마차이다.

보수가 더디게 가거나 퇴행하면 진보가 채근하고, 진보가 급발진하거나 폭주하면 보수가 잡아당기며 가기 때문이다.

정권쟁취를 위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타도와 궤멸의 대상이 아닌 경쟁 관계며 보완관계인 것이다.

한국의 정치지형상 인구가 많은 동쪽지역 사람들이 정권을 더 많이 잡아 득세하다 보니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패거리 정치를 해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을 싹쓸이하는 기형적 행태가 이어져 왔다.

어느 나라든 보수성향 정당과 진보성향 정당들이 존재하나 이념의 벽이 허물어진 지 오래고 양 진영의 정책들을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치열하게 경쟁하나 서로의 가치와 장점들을 존중해 적절히 조율하고 타협하는 협치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기조 위에서 안보는 온도차이가 있으나 대동소이하고 개인과 사회에 자유를 신장할 것인가 평등을 확장할 것이냐, 경제성장이냐 분배정의냐, 선택적 복지냐 전면적 복지냐 등을 놓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정도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는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 뿐 최종적인 목표는 똑같이 잘 사는 나라 행복한 국민에 있다.

그걸 정치권이 어떻게 포장해서 국민에게 어필하느냐에 따라 진보정권이 들어서기도 하고 보수정권이 들어서기도 한다. 그래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의 선택은 시대정신의 바로메타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진보세력이 득세한다 할지라도 보수의 가치는 죽지 않고 기능 해야 하고, 보수세력이 집권한다 할지라도 진보의 가치는 위축되지 않고 기능 해야 한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잘못으로 보수적 가치가 기를 펴지 못하는 형국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지지도가 8%대로 곤두박질하고 하고 있는데도 당권싸움에 매몰되어 있고, 보수개혁을 외치는 바른정당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보수의 쇠락을 넘어 몰락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덩칫값을 하지 못하는 자유한국당과,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바른정당 모두 대오각성할 때이다.

보수진영은 대패했을지라도 보수의 가치는 도도히 살아 숨 쉬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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