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꽃
산과 꽃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5.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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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산에 꽃이 없다면 그 산은 밋밋하니 재미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꽃을 찾아 산에 가지만, 알고 보면 산의 주인은 꽃이 아니다. 꽃은 그저 잠깐 들렀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산의 주인은 산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산에 오래 머물러 보아야 한다. 산을 눈여겨 본 사람에게 산은 꽃이 없다 해서 결코 밋밋하니 재미없는 존재가 아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산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중 일부일 뿐이다. 한 시도 쉬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산이고, 그래서 산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송(宋)의 시인 왕안석(王安石)은 산과 꽃에 대해 이렇게 읊고 있다.

 

산을 다니다(遊鐘山)

終日看山不厭山(종일간산불염산) 종일토록 산을 봐도 산은 싫지가 않아
買山從待老山間(매산종대노산간) 산을 전세 내어 그곳에서 늙어 가리라
山花落盡山長在(산화낙진산장재) 산에 핀 꽃 다 져도 산은 그대로이고
山水空流山自閑(산수공류산자한) 산골 물 흘러도 산은 절로 한가롭구나



종산(鐘山)은 남경(南京) 북쪽 외곽에 자리한 산으로, 지금 이름은 자금산(紫金山)이다. 옛날부터 자연 풍광이 뛰어나고, 문화 유적지가 많아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들었던 곳이다.

왕안석(王安石)도 만년에 이곳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산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면서 느낀 바를 짧은 시에 담았다.

그런데 시인은 특이하게도 산의 수려한 풍광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산 자체에 대한 철학을 설파하는 데다 온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시인은 산을 온 종일 쏘다니며 보았지만, 전혀 싫증이 나지 않는 것에 자신도 깜짝 놀랐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산이라면 남은 삶을 편안하고 즐겁게 보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시인은 약간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산을 아예 통째로 전세 내어, 거기서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맘먹은 것이 그것이다. 시인이 실제로 이 산을 전세 내어 여생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이 산에 자신이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를 나타내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럼 시인이 반한 산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항상성(恒常性)이었다. 꽃은 피고 지지만 산은 묵묵히 제자리에 있고, 물이 흘러가도 산은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킨다.

꽃이 피었다 지고, 물이 흘러 왔다 흘러가고, 산속은 연중무휴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정작 변하지 않는 것 하나가 있으니, 바로 산 자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산은 불변의 믿음을 주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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