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간질
간질간질
  • 하은아<증평도서관 사서>
  • 승인 2017.05.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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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엄마는 밤에 손톱을 자르면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밝은 낮에는 무엇을 했냐며 나무라셨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밤에 자르면 빛이 어두우니 너무 짧게 자르거나 손톱 살을 자를 수 있어 그것을 막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손톱을 자르고 나면 잘린 손톱은 꼭 화장실에 버리라고 하셨다. 텔레비전 만화를 보니 손톱을 아무 곳에 버리면 백 년 동안 살은 쥐가 그것을 먹고 손톱 주인으로 변신하여 행세한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그 만화가 정말 무서웠다. 손톱을 자르고 귀찮아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거나 바닥에 뒹굴어도 모른척했다. 그래 놓고서는 쥐가 먹어버리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내가 두 명이 되면 진짜 내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똑같은 존재가 둘, 셋이 된다는 것은 막연한 두려운 상상력이었다. 왠지 모를 불길하고 안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았다. 이런 생각에 반전을 선물한 책이 바로 `간질간질'(서현 지음·사계절)이다.

간질간질한 머릿속을 벅벅 긁으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진다.

빠진 머리카락은 또 다른 내가 되어 엄마에게 밥을 달라 하고, 아빠에게 놀아 달라 하고 춤을 추며 논다. 다시 또 간질간질하고 머리가 빠지면 나는 더욱 많아진다. 많아질수록 즐겁게 노는 재미는 커진다.

그런 재미도 잠시 엄마의 청소기에 머리카락이 쑥 빨려 들어가면 나는 다시 한 명이 되는 내용이다.

노란색 얼굴과 팔다리, 형광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가 춤을 추는 그림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다.

엄마를 쉴 새 없이 불러대고 간식 달라, 용돈 달라 요구하는 여러 명의 `나'로 인해 엄마는 정신이 없다.

아이 둘 챙기랴 동분서주하는 나를 보는 것 같아 웃기면서도, 슬프다.

고상하고 우아한 취미 따윈 사치라고 다시금 말해주는 것 같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는 더욱 힘들다. 매달리고 말 타기 하자, 숨바꼭질하자, 머리를 잡아당기고,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긴다.

아빠는 오늘 하루 피곤함을 아이의 웃는 얼굴로 순식간에 잊은 듯했으나 다시금 피로가 몰려온다. 그럼에도 아이와 놀아주라며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건네고 쉴 틈 없이 아이와 이것저것 놀아주라고 주문했던 어제의 내가 떠올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입도 간질간질하다. 머리카락을 쑥 뽑아 입으로 훅 불어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싶다.

청소도 같이하고, 음식도 만들고, 빨래도 하고 커피도 한잔 같이 마시고 싶다. 조잘조잘 수다도 떨고 싶다. 상상으로만 가능하니 시원하게 머리를 벅벅 긁어본다. 유쾌한 상상으로 오늘 하루가 맑다.

몸의 피곤함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쉽게 지치고 짜증을 낸다. 피곤함이 간질간질하게 찾아오면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머리를 벅벅 긁어 나를 여러 명으로 만들어 신나게 춤을 추는 상상! 어느새 입 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하루를 즐겁게 보내게 하는 마법. 이 책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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