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아있어
나, 살아있어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7.05.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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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어디선가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소리가 이끄는 대로 모퉁이를 돌아서니 벽이다. 벽 중앙이 네모로 창문처럼 뚫려 있다. 바닥에 누운 둥치 큰 나무가 보인다. 네모난 공간에 대각선으로 드러누운 나무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는다. 줄기엔 바싹 마른 덩굴줄기가 얼기설기하고, 굵은 덩굴 두어 줄기는 나무와 한몸인 양 붙어 있다. 밑동은 갓 이식할 나무처럼 뿌리를 감추고 흙덩이를 달고 있다. 흙덩이에 핀 자잘한 꽃이 나의 가슴을 뒤흔든다.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밑동이다. 흰 무꽃과 노란 유채꽃이 마치 풋풋한 소녀들이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깔깔거리듯 나풀거린다. 나무줄기는 죽은 것처럼 보이나 밑동에선 풀꽃을 키운다. 더욱이 우듬지는 작은 창을 향하여 자신을 알리기라도 할 양팔을 내민 모습이다. 마치 길손의 손목을 잡을 기세처럼 보인다. 무언의 힘에 이끌려 나무 앞에 서 있는 내가 그 증거이다.

나무는 눈이 부신 생명을 여럿 키우고 있다. 생명을 키우는 이 나무를 `죽었다고 봐야 하냐, 살았다고 봐야 하냐?'그것이 의문이다. 이것도 잠시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나무의 육신은 죽었으나, 나무의 정령은 살아 있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성성했던 그날을 기억하며 풀꽃을 키우는 중이다. 물기 잃은 생명에 생명수를 줘 굳게 닫힌 감각을 열고 있다. 밑동에서 풀꽃을 키우듯 또 하나의 메마른 인간을 구제한다.

호텔 입구에 표제 없는 작품을 전시한 작가의 속내는 무엇인가. 혹자는 그저 죽은 나무를 옮겨 놓은 것일 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이즈음 섬 천지에 너울거리는 것이 유채꽃인데 뭔 호들갑이냐고 딴지 놓을지도 모른다. 주위를 돌아보니 이 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나무가 있는 공간은 천장이 뚫려 있다. 위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싶다. 시선을 달리하면, 느낌도 생각도 달라지리라. 호기심에 이 층 계단으로 성큼 오른다.

평면에 놓인 것처럼 길게 누운 나무 전신이다. 위치를 달리하여 나무의 줄기 부분에도 서보고, 우듬지에도 서본다. 그러다 밑동에서 바라보니 마치 나무가 하늘을 향하여 우뚝 서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밑동에선 성성했던 그날처럼 듬직하게 서 있는 듯, 우듬지의 촉수는 작은 창을 통하여 햇볕을 온몸으로 받는다. 그래, 누군가를 향하여 “나, 살아있어”라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나무이다. 어찌 보면, 그 외침은 영혼을 돌볼 틈 없이 살아온 나의 항변이 아닐까 싶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수개월 살아냈다. 스스로 의식적으로 살았다고 말하나 그것은 죽은 감성을 감추고자 포장한 위로의 항변이다. `살아냈다.'라는 표현은 지금껏 내 삶을 어쩌지 못하는 공간에서 영혼 없이 달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자 애를 쓴 것이다. 생명 잃은 나무를 갸웃거리다 내 안에 꿈틀거리며 터져 나온 진정한 목소리에 놀란 것이다. 죽은 나무에 풀꽃을 바라보다 내 영혼을 돌아봄이 그나마 다행이다. 꽃들의 발랄함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메마른 가슴에 감성 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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