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휴가, 그리고 은구석 이야기
세조의 휴가, 그리고 은구석 이야기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 승인 2017.05.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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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연휴가 되면 직장인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어디 좋은 곳으로 휴가를 떠날까? 계획을 세우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살아가면서 쉼표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우리 삶의 쉼표가 되는 휴가는 그래서 꼭 필요한 것 같다.

조선 7대 임금인 세조도 휴가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자주 명산대찰을 찾아 휴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썩 유쾌하게 휴가를 즐긴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독한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좋은 계절에 전국에 좋다는 명산대찰을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속리산 복천암의 불공이 신통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으로 불공을 드리러 왔다. 먼 길을 찾아온 보람이 있었는지 왕은 복천암에서 불공으로 치료와 치유 등 효험을 톡톡히 보았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한 스님들에게 은혜 갚는 의미에서 선물을 주기로 하고 이런 제안을 한다.

“사찰의 마당에 있는 저 돌기둥을 끌고 가다 힘이 빠져 멈추는 곳까지를 사찰의 소유로 삼겠노라.” 임금의 말대로 스님들이 온 힘을 다해 그 돌기둥을 끈으로 묶고는 끌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스님이 무거운 돌기둥을 끌고 내려와 멈춘 곳이 오늘날 정이품송 근처였다. 그 돌기둥을 길옆에 세워두고 법주사의 경계로 삼았는데, 그 돌기둥 이름이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은구석(恩救石)이다. 보은하려면 제대로 곡식이나 재물로 하면 될 것을 스님들에게 그 무거운 돌기둥을 끌도록 했으니 보은 한번 고약하게 했다. 은구석 돌기둥은 속리산국립공원 가는 길에 정이품송 바로 지나 길옆에 있는 작은 공원 은구석공원에 우뚝 서 있다. 은구석공원은 봄에는 철쭉을 비롯하여 수많은 꽃으로 잘 정비된 공원이다. 마치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예쁜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세조가 복천암의 스님들에게 무거운 돌기둥을 끌도록 고약하게 군 때문인지 피부병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조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상원사에 기도를 드리고자 오대산을 찾아갔다. 상원사로 향하던 도중 무더운 날씨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신하들을 물리치고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그때 마침 동자승 하나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세조는 동자승에게 자신의 등을 씻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시원스레 세조의 등을 씻는 동자승에게 세조는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마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동자는 한 술 더 떠서 “임금님께서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시원하게 몸을 씻던 세조는 이 말을 비몽사몽 간에 듣게 되었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세조가 몸을 살피자 그렇게 흉하게 번져 있던 종기가 씻은 듯 나았다는 것이다.

`지랄총량제'라는 말이 있다. 필자가 이 말을 응용해서 말썽을 많이 피우는 제자들을 힘들어하는 교사들에게 `감사총량제'가 있다고 말해 준다. 어떤 일에나 `총량'이 있는 것 같다. 말썽을 많이 피우는 학생이 나중에 졸업하면 선생님의 고마움을 알고 감사한다. 그러나 공부 잘하고, 착한 학생들은 학교 다닐 때 자신의 감사를 다했기 때문에 졸업하면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누구나 감사해야 할 총량이 있기 때문에 지금 힘들게 하는 제자일수록 나중에 감사하고, 효도한다. 실제로 필자를 찾아오는 제자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말썽쟁이들이었다.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하며 자신의 잘못을 알고, 이를 씻기 위해 명산대찰을 찾아 불공을 드렸다. 가득 차야만 넘치는 원리가 인생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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