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침묵
수상한 침묵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7.05.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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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정유년 5월,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상권 마흔한 번째 이야기는 영묵 선사(靈默 禪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영묵 선사가 석두에게 가서 말하기를 “하나의 말이 잘 계합하면 곧 머무르고 잘계합하지 않으면 곧 갈 것이다” 석두가 문득 앉거늘 영묵 선사가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석두가 불러 말하기를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다만 이놈이거늘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서 무엇하느냐?”영묵 선사가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달았다.

석두는 청원 행사의 수제자란다. 영묵 선사라는 스님이 석두 스님 계시는 곳에 와서 석두 스님과 대화를 해서 그 대화가 제대로 합치가 되면 거기서 머물러서 살고 합치되지 않으면 그냥 가겠다는 것이다. 배짱이 두둑하다. 그 말에 석두가 그냥 섰다가 문득 앉았다. 그러니까 영묵 선사가 옷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그때 석두 스님이 “상좌여!”하고 영묵 선사를 불렀다. 영묵 선사가 고개를 돌리니까 석두 스님께서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놈인데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공상을 많이 하고 망상을 많이 피우고 신경을 많이 쓰는 무슨 짓을 하느냐?”라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영묵 선사가 깨달았다는 것이다.

선요나 조사 어록에 이런 말이 나온단다.

`백 년, 삼만육천일에 반복한 것이 원래 이놈이다' 백 년, 삼만유천일은 일생을 말하는 것이겠다. 십 년이면 삼천육백일이고 백 년이면 삼만육천일인데 우리가 산다고 해봤자 백 년을 사니까 일생을 가리킨 것이다. 일생동안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원래 이놈이다. 이놈이 들어서 백 년, 삼만육천일을, 어제·오늘·내일을 늘 그런 짓을 한다는 것 아니겠는지.

청와대 관저 안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지낸 요리연구가 김막엽씨의 얘기를 옮기면 이렇다. “이분이 거처한 방에는 큰 거울이 없다. 화장대의 둥그런 거울과 세면장에 붙어 있는 거울밖에 없다. 관저 안에 큰 거울이 있다면 운동실이 유일한데, 한쪽 벽면만 거울로 돼 있었다. 이 운동실은 원래 대통령 내실에 딸린 접견실을 개조한 것이다”이는 사방 벽에 대형 거울로 둘러싸인 `박근혜 거울방'은 없었다는 얘기겠다.

하지만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한 `박근혜 거울방'은 언론 매체마다 다투어 베끼면서 기정사실이 됐다. 그 관계자는 왜 하필 `거울방'을 언급했을까? 그렇다 해도 기자들이 문의했을 때 청와대가 한마디만 하면 바로 밝혀질 사인이었것을. 그런데 청와대는 “노코멘트”라고만 답했단다. 이는 곧 수상한 침묵이라 아니 할 수 없지 않은가.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다만 이놈이거늘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서 무엇하느냐?”처럼 공개, 투명, 소통을 내세우는 새 정부다. 이것이 혹 자신들에게 필요하거나 유리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공정함을 사명감으로 어느 한 쪽 세력의 청와대로 비치지 않길 국민은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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