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법과 원칙
길 잃은 법과 원칙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5.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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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대통령 지시로 세월호 참사 때 숨진 기간제 교사 2명의 순직을 인정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사고가 난 지 3년 만이다. 가족들은 그동안 꾸준히 순직 인정을 요구했지만 인사혁신처는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두 교사는 사고 당시 학생들을 구하려고 4층 선실로 내려갔다가 희생됐다. 당시 담임도 맡고 있었다. 제자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행위로 보나, 실제로 학교서 수행한 업무로 보나 두 교사는 대한민국 교단에 선 누구 못지않게 사도(師道)를 지켰던 사람들이다. 더욱이 교육공무원법은 교원의 범위 안에 기간제 교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공무원을 규정한 법규에만 매달려 이들이 교사로서의 의무에 목숨을 바친 실체적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제자를 구하기 위해 사지로 들어간 그들에게 `교사도 아닌 비정규직이 주제넘은 짓을 했다'고 타박한 것이나 다를 게 없었다.

법원은 지난달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교사를 `순직군경'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교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4층 선실에 있다가 바닷물이 밀려들어 오자 학생들을 밖으로 대피시키고 갑판에서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탈출을 도왔다. 이때 자신도 함께 탈출할 기회가 있었으나 다시 선실 안으로 들어가 학생들을 구조하다가 숨졌다. 그는 순직공무원으로 처리됐으나, 아내는 보훈처에 순직군경 등록을 신청했다. 보훈처가 교사는 군경이 아니라며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에 1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가족이 순직군경을 요구한 것은 예우에서 순직공무원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순직군경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현충원 안장과 보상금이 보장되지만, 순직공무원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재판부는 생명을 희생해가며 학생들을 구조하다 사망한 교사는 순직군경에 준하는 예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이 `생명과 신체에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직무 수행 중 사망한 공무원'도 순직군경으로 인정하는 만큼 일반 공무원도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법과 원칙에 예외를 두는 전례를 만들 경우 앞으로 집행과정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인사처나 보훈처의 입장도 일리는 있다. 그렇지않아도 우리는 국가 권력의 최정점에서부터 법과 원칙이 허물어져 국정이 마비되는 참담한 상황을 목도했던 터다. 엄정한 법치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그동안 룰이 변칙적으로 운용돼 특혜 시비를 초래한 사례들 대부분이 권력층과 사회적 강자만의 이해를 반영했다는 사실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관가에서 약자를 돕기 위해 원칙에 눈감았다는 의로운(?) 얘기는 별반 들어보지 못했다. 제자를 살리려다 목숨을 잃은 교사들에 대해서까지 법과 원칙을 사수하려는 관계 당국의 결연한 의지가 전혀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이다.

검사들이 폭탄주 마시고 두툼한 촌지까지 주고받아 서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긴 `돈 봉투 만찬'은 법과 원칙이 누구의 편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이 술자리에서 사용한 특수활동비는 정부의 예산집행지침이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수집 및 수사, 그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으로 사용처를 특정하고 있다. 검사들이 공공연하게 회식하며 용돈으로 주고받을 예산이 아니다.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수사검사 격려 차원의 관행'이라며 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청와대가 나서자 부랴부랴 대규모 감찰단을 꾸려 뒷북을 치고 있다. 대상이 교사냐 검사냐에 따라 법과 원칙이 확연하게 달리 해석되고 집행되는 것이다. 이런 한 편에서 두 기관이 법이 정한 예외 규정과 법원의 판결 등으로 재량권을 확보했음에도 세월호 유족의 간청에 귀를 닫아온 행태는 우울한 촌극으로 다가온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퇴임사에서 `정의가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는 소동파의 시를 인용하며 후배들을 훈도했다. 보다 깊은 뜻이 담긴 구절이겠지만, 그가 만일 검찰의 정의감 과잉을 걱정해서 한 말이라면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히려 검찰의 정의는 더 잔인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보다 큰 권력과 강자, 무엇보다 자신을 향할 때 말이다. 진짜 잔인한 것은 법과 원칙으로 포장돼 고인이 된 세월호 교사들에게 가해졌던 가혹한 행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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