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백행지본을 가르치는 신항서원
효백행지본을 가르치는 신항서원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 승인 2017.05.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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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김명철

청주를 엄마의 품처럼 동쪽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대산과 낙가산, 그 아래 조용한 마을 이정골이 있다.

이정골 저수지로 유명한 이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 맨 끝에 충청북도기념물 42호로 지정된 신항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의 기원은 중국 당나라 말기부터 찾을 수 있지만 송나라의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열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보급한 이래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치면서 중국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경상도 영주에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서원은 공무원을 위한 준비기구로서의 학교의 성격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서원은 사림들의 정치적, 사회적 기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즉, 교육과 교화를 위해 유교의 성현들을 제사하고, 학생들을 교육함으로서 도학정치를 주장하며 여러 가지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며 준비하는 곳이었다.

신항서원은 1570년(선조 3)에 유정서원으로 문을 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곧이어 복원하였으며, 1660년(현종 1)에 `신항'이라고 임금으로부터 사액된 왕립서원이 된 것이다.

신항서원은 그 후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되고 말았다.

광복 후 지방 유림들에 의해 복원하였으나 시설이 미약하고 퇴락하여, 198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중건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사우와 중앙의 신문과 양옆 협문으로 된 내삼문, 6칸의 재실 겸 강당, 5칸의 수호사, 묘정비각과 외삼문, 정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이, 이색, 경연, 박훈, 김정, 송인수, 한충, 송상현, 이득윤의 9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서원에 배향하는 인물은 향촌 사회를 교화하기 위해 학덕이 뛰어나거나 충절과 의리로서 모범이 될 만한 그 고을이 출신이거나 관련을 가진 인물들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경년이라는 분은 학문적으로 큰 업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항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분이 바로 효자중의 효자였기 때문이다.

성종이 경연을 불러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하여 한겨울에 얼어붙은 무심천에서 잉어를 잡은 경위와 경서 가운데 으뜸으로 삼는 것에 대하여 묻자 “마음속에 새기는 성인의 행위 중에는 순임금의 큰 효도와 주공의 충성을 으뜸으로 간직하고 있으나, 자신은 거기에 이를 수 없다”라고 하며 벼슬도 사양한 효자였다.

그 후 경연의 효성이 청주지역의 귀감이 되어 수 많은 효자들을 배출하도록 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서원에 배향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전국방방 곡곡이 역사적인 유적이 아닌 곳이 없다. 멀리 있는 역사 유적지도 답사하며 조상의 얼을 생각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인 향토사의 유적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면 참 좋겠다.

5월 가정의 달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조상들의 삶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유적에서 가족의 사랑을 나누면 더 좋겠다.

자녀에게 효도에 대한 백 마디 말보다 효백행지본의 교육의 현장인 신항서원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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