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화려한 날에
5월의 화려한 날에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팀장>
  • 승인 2017.05.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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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표고버섯목 위에 연신 먹이를 나르는 딱새 한 마리가 잠시 머뭇거린다. 부리로 커다란 벌레를 물고는 꼬리만 좌우로 놀릴 뿐 자리를 이동하지 않는다.

하필이면 농사자재를 넣는 선반에 둥지를 틀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하고, 새한테 미안하고.

화창한 봄날. 선반 위 호미를 집어들다 깜짝 놀랐다. 조그마한 새 두 마리가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 자리, 오동나무상자 안에 7개의 알이 있던 것이다. 커피가루를 뿌려놓은 듯 작은 알을 품는 암컷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나의 눈을 응시하고, 조금 떨어진 곳 밤나무 가지에는 수컷으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떠나질 않기에, 나도 조심스러워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는다. 농기구를 꺼내야 하는 상황에 자리를 비울 때를 기다려도 2-3시간째 자리 이동을 하지 않아 하려던 일을 포기해야 했다.

암컷이 잠깐 자리를 비울라 치면, 다시 수컷이 들어서 있고, 대략 난감한 상황은 그 이후로 계속되었고, 알에서 깨어 지금은 둥지가 비좁을 정도로 커져 있다.

긴 시간 알을 품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새끼에 연신 먹이를 날아 먹이는 어미는 야윌 대로 야위어, 밤나무 가지에 얹어 있는 듯한 몸에는 털이 고르지 않은 상태로 불쌍하기까지 하다.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한 듯 조심스레 주위를 살펴 먹이를 먹이고는 쏜살같이 자리를 비운다. 저렇게 야윈 몸으로 어찌 그리 빠른지.

텃밭 한 켠 딸기가 꽃이 진 자리에 매달려 있다. 몇 개는 벌써 개미에게 희생, 달다 싶을 정도의 색이 될 때면, 개미가 선수를 친다.

작년에 심어 놓은 모종에서 런너가 뻗어 새끼를 만들어 낸다. 많은 꽃을 달고도 여러 갈래의 런너가 뻗어 있다. 건강하고 좋은 열매는 오래된 모종에서가 아닌 새끼에서 달린다.

모종은 새끼를 만들어 내고자 넓고 너른 터에 뻗는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세력을 다하며,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까지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력을 다한 모종은 그 자리에 갈색의 흔적만을 남기고 역할을 다한다.

먹기 좋은 딸기를 얻고자 볏짚으로 멀칭을 해주고, 런너를 잘라 주고 싶다가도 생각에서 멈춘다.

모란에 이어 작약이 꽃망울을 열고, 형형색색의 아이리스가 모네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봄날에

통통하고 날렵했던 딱새는 알을 낳고 먹이를 나르며 야위었고, 두툼하고 진한 녹색의 모종은 새끼를 만들어내며 자리했던 흔적을 남긴다.

이제 먹이를 잡아 먹이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딱새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터에 뿌리를 내린 새끼는 모종이 되어 또 다른 새끼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갈 것이다.

화사하고 화려한 5월이다. 장미가 화창한 생동의 기운을 색으로 향으로 담아 만발하고, 아이리스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 화가에게 처음 키스했던 향을 머금는 계절이다.

모진 겨울의 한파를 이기고 발현하는 화려한 색과 생동하는 자연의 이면을 함께 생각하면 더 멋진 계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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