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5.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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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시고 밖에서 밤을 새고 오시는 모습을 저는 친구들이나 주위 어르신들 앞에 많이 창피하다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왜 술을 드시는지는 한 번도 헤아려보려고 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는 술이 좋아 그렇게 드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생전에 한 번도 누구에게 아버지 자랑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술주정꾼에 가난한 농사꾼이요 나무꾼인 아버지가 어린 저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가 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열반하신 아버지께 너무도 미안하고 죄송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아버지 어머니께 해 드리는 것이 효인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명절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잘 자라 훌륭해지면 그것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요 효를 다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다른 사람 앞에서 부모님을 자랑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술주정꾼,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부모님 모습이 남들에게 내보이기 창피하다는 생각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 자존심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저의 명예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제가 내린 결론은 아버지 어머니의 살아오신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드리는 것이 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머니 아버지가 대단한 분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저였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했을 것 같은 어려운 삶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저희 7남매를 키우셨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생각의 변화였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고귀한 부모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인생 다 살고서야 철이 들었는지 이제서야 저는 가난한 농사꾼 나무꾼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어디서나 떳떳하게 자랑하곤 합니다. 6·25 전쟁을 치른 후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에 7남매를 낳아 배부르게 먹여 키우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굶어서 죽어가도록 놔두지 않으시고 허리띠 졸라매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학비를 마련해 가르쳐 주셨던 그 모습들을 떠올려 보면 감사를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든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드리는 것이 제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라는 것을 자각한 후부터 저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왜 저렇게밖에 못할까!”하면서 이해를 하기보다는 답답하다 생각하던 제가 이제는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랬을 거야. 아니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야” 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나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언제나 남과 비교해 자신이 어느 위치인지를 정해 놓고 행동하던 것을 이제는 현재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여기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날갯짓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행복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잘 지내게 되며 저녁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해졌습니다.

가정의 달 5월. 어린이날에는 어린 자녀들에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선물도 한 아름 안기고,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며 적지만 용돈도 살짝 챙겨 드리는 아름다운 풍속이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스승의 날은 스승님께 전화나 문자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좋은 이때 어리석었던 저처럼 혹시라도 자기 입장에서 남을 바라보고 탓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서로 인정해주는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사정을 안타까워하고, 잘된 일은 함께 기뻐하며 살아간다면 가정의 화목은 절로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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