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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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5.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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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후~”죽은 나무에 바람을 불어 넣어준다. 마법의 바람이다. 이 바람은 그이의 손끝에서 나온다. 손을 한번 거치면 쓸모없어 널브러진 나무에 생명이 살아난다. 마치 마법의 주문을 걸은 것처럼 테이블이 탄생하고 벤치도 생겨난다. 화분도 되었다가 그네도 된다. 눈부신 변신이다. 이 은밀한 작업장은 농막이다. 주말에만 가는 나로서는 파레트의 상상할 수 없던 다른 모습에 감탄한다. 신기한 일이다.

쓰임새가 없어진 나무였다. 쓰여 질대로 다 쓰이고 버려진 나무였다. 한때는 어느 지게차의 물건을 실어 나를 때 깔판으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어쩌면 물건을 쌓아놓느라 밑받침으로도 쓰였을지도 모른다.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구조물이 다 쓰이고 나니 가차없이 버려진다. 그 깔판이 어느 날부터 하나둘씩 농막에 쌓이기 시작했다.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아마도 겨울에 땔감으로 쓰일까 짐작으로만 더듬고 있었다.

공사판에서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된 파레트가 무한한 변신을 하게 된 데는 그이를 만난 덕분이다. 파레트가 잘리고 못질을 거쳐 그라인더로 매끈해진다. 그 위에 페인트가 입혀지면 작품이 된다. 아니 예술품이다.

가만히 그 작업을 지켜보노라면 죽었던 나무에 혼을 담는 일이다. 손놀림이 장인의 느낌이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꼼꼼히 따지고 잘라야 한다. 서로 맞지 않아 고생하고 맞물리지를 않으니 크기를 재는데도 여간 신중한 게 아니다. 저토록 진중한 모습은 설계사무소 다닐 때 설계를 하면서 본 이래로 처음이다. 못 쓰는 자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어디 정성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거기에 꽃이 심겨지면 꽃밭이 되고 채소를 심으면 채마밭이 되는 것이다. 꽃도 살아나고 휴식의 공간이 생겨난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그네다. 둘이 앉아서 차를 마시는 곳도 책을 들고 앉는 곳도 여기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자리를 잡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술사의 손 같다. 재물이 계속 나온다는 화수분처럼 새로운 작품이 자꾸만 나오는 손. 뚝딱 하고 만들어져 나오는 화수지(河水指)인 셈이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많이 좌우된다. 외면당할 물건도 한 사람의 손을 빌려 멋지게 새로 태어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화려한 부활이 될 수도, 굴레가 될 수도 있다.

나도 그이의 손에 맡겨지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나라는 이름이 정착하는 데도 그이의 그늘 밑이었다. 사람들에게 나 개인의 이름보다도 누구의 아내로 인지도가 있었으니까. 어쩌면 나도 그이의 손길이 미처 새로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수필가라는 이름도 얻지 못하고 이십 오 년을 한 직장에 다니는 커리우먼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을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키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 현재의 내 삶에 만족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소득인가.

오늘도 밖에선 뚝딱뚝딱 망치질이다. 저 바쁜 손에서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타카 타카”들려오는 마법의 주문. 못총 박는 소리가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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