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보내며
봄을 보내며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5.1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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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엄밀히 말해, 봄을 보낸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봄이 오고 가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연의 섭리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봄을 맞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는 것처럼 말들을 하곤 한다. 이러한 언어 관습으로부터 봄에 대한 인간의 애착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봄에 대한 애착은 봄이 오고 갈 때, 마치 귀한 손님이 왔다가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영송(迎送)의 의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도 봄이 가는 것에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送春詞

日日人空老(일일인공로) 하루하루 사람은 부질없이 늙어 가는데
年年春更歸(연년춘갱귀)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네
相歡有樽酒(상환유준주) 한 동이 술 있는 걸 즐기면 되지
不用惜花飛(불용석화비) 꽃 날리는 것을 애석해할 필요는 없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봄이 또 지나가는 것을 느낀 시인이 맨 먼저 한 일은 냉정하게 세상을 관조하기였다.

그 이유는 봄이 지나가는 것을 자연의 섭리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봄이야 해가 바뀌면 또 돌아오지만,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삶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힘이 있든 힘이 없든, 이름이 있든 이름이 없든, 사람은 예외 없이 하루가 가면 그 하루만큼 늙어갈 뿐, 결코 젊어지는 일은 없다.

꽃이 지고 따라서 봄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시인은 그렇지가 않다. 봄은 다시 오게 되어 있으니 슬퍼할 일이 없지만, 여기에 대비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삶이다.

불가역성(不可逆性)의 삶은 흔히 무상감(無常感)이나 비애감(悲哀感)으로 귀결되기 마련이지만, 시인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그러면 시인이 무상감과 비애감을 극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연과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자 한 것이다. 술이 없으면 어떨까? 술은 그저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시면 그뿐이다. 중요한 것은 술이 아니고 관조적 삶의 자세이다. 관조적 삶을 사는 시인에게 꽃이 지는 것은 애석해할 일이 전혀 아니다.

꽃이 지고 봄이 가는 것은 애석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름다운 꽃이 사라지고,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으로서는 슬프지 않을 리가 없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관조적 삶의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슬픔을 이겨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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