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바란다 ① - 점령군, 촛불 그리고 태극기
대통령에 바란다 ① - 점령군, 촛불 그리고 태극기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5.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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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나는 지금 유난히 떨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 보라. 오늘 새롭게 임기가 시작된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은 촛불이라는 또 하나의 기적을 통해 탄생됐다.

그 기적은 겉으로는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차별과 탄압의 비민주적 파탄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 깊은 속내에는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모순에 대한 단절과 자본의 지배적 구조에 따른 불평등, 보호받지 못한 인간의 권리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분노의 표출이 만들어 낸 것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차분하게 진영을 갖추고 국정운영을 구상하며 인수인계를 할 겨를도 없이 대통령의 업무는 시작되고, 미루어졌던 할 일은 너무도 많을 것이다.

숨 막히는 일정으로 새 정부가 조각(組閣)되고, 상당수는 이미 새도우 캐비닛이 짜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새 대통령에게 꼭 지켜줬으면 하는 몇 가지 바람이 있다.

우선 점령군을 허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집단을 이루어 공동 노력하는 정당정치의 근간에서 우리 편을 중심으로 진영을 구축하는 일은 일견 타당하다. 게다가 치열한 선거를 치르면서 호흡을 함께했던 캠프의 핵심인사들에 대한 신분보장 등 대가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억압과 불평등, 그리고 목숨마저 쉽게 내팽개쳐지는 저 세월호의 비극을 떨쳐버리려는 국민의 단호한 촛불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캠프 운운하는 점령군을 또다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점령군은 대개 위계질서에 종속되며, 다른 집단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불평등과 차별은 반드시 거기에서 시작된다.

386세대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이 결국 노무현 정권의 위기를 불러왔으며, 그로 인해 민주화를 위해 묵묵히 거리로 나섰던 민초들을 얼마나 좌절하게 했는가. 그로 인해 그들은 침묵했으며 그 대가로 우리가 지금 같은 국가의 위기를 치르는 것 아닌가.

점령군을 만듦으로 인해 불평등한 억압구조가 만들어지게 되고 결국 인의 장벽에 둘러싸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리라는 것쯤은 우리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고백한다. 그동안 나는 새벽 다섯 시에 라디오에서 울리는 애국가를 애써 듣지 않으려 했고, 여러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고 외면해 왔다. `이게 나라냐'라는 강한 불신과 불만, 그리고 분노의 표출이 고작 그런 옹졸함이었다.

그러고도 촛불과 태극기가 맞서는 나라 꼴을 보게 됐으며, 그럼에도 1700만명이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는 희망을 통해 `이게 나라다'를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오늘 벅찬 기쁨으로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촛불이 적폐의 사슬을 끊고 뜨거운 선거 열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 나는 감히 `나라'를 되찾은 것 같다는 호들갑을 떨고 싶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는 2013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원제 Korea, Th e Impossible Country)>라는 책을 통해 “한국은 경제적 성취를 이뤘다는 측면에서뿐 아니라 법치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신장시킨 국가의 본보기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를 잡았다”며 두 가지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표현했다.

오늘 나는 여기에 한 가지의 기적을 더한다. 촛불과 태극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는 기적. 백범 김구선생님의 말처럼, 새 대통령과 함께. 국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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