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큰 용기
정말 큰 용기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7.05.0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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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저 다음 주에 장가갑니다. 시간 되시면 저희 조촐한 결혼식에 참석해 주세요.

사촌 동생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달력부터 확인하였다. 아니 어느 일보다 우선해서 가야지. 대구까지 두 시간 남짓, 시원스레 쭉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화창하고 산뜻한 하늘은 한결같은데 그 아래 산천의 봄빛의 생동감은 새삼스레 다채롭다. 시인은 황무지에도 싹을 틔우는 4월의 생명력을 잔인하다고까지 했던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고속도로 들어서야 할 곳도 빠져야 할 곳도 두어 번 지나쳤지만, 길은 길로 통하고 오히려 또 다른 풍경이 선물처럼 펼쳐진다.

망우공원에 있는 호텔 뷔페의 작은 방에는 둥근 테이블이 여섯 개 놓여 있고, 세 개가 우리 신랑 측이었다. 할아버지의 자손인 일곱 집이 모두 모이지는 못했지만, 서울 큰아버지 댁부터 사촌 동생들과 조카들까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반가움에 두 손 부여잡고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다음 주가 시험이라고 두 딸아이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크게 아쉬웠다. 살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순간순간 현명하게 판단하기가 쉬운 게 아니다. 테이블을 하나 더 들였는데도 자리가 부족하였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와서 잠시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내 옆방에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늦게 도착한 손님까지 느긋이 식사를 마치고, 차도 마시고 자리를 바꾸어 가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촉을 밝혀 일곱 테이블에 놓아주자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를 정돈하였다. 간이의자에 앉기도 하고 비켜서기도 하며 새로운 한 쌍의 탄생을 위한 길을 만들었다. 두 손 꼭 잡은 신랑과 신부가 박수를 배경음악으로 입장하여 장인 앞에 섰다. 신랑의 청으로 목사님이신 신부의 아버지가 혼인서약과 주례, 반지 교환까지 식을 이끌었다. 신랑이 신부를 위하여 축가를 부르고, 어린 조카가 부부를 위하여 축가를 불러주는 것으로 조촐한 결혼식이 끝났다.

소박하고 담백한 별식을 먹고 돌아오는 길처럼, 그 맛의 묘미를 되짚어 보았다. 서른한 살의 동생은 큰 사고를 두 건이나 겪었지만, 그 작은 체구에는 그런 내색 없이 생동감과 자신감이 넘친다. 이미 자력으로 집도 사두었고, 가정과 사회에서의 목표가 구체적이다. 큰아버지가 멀리서 오신 손님들에게 차비를 챙겨주셨는데, 신랑이 친지들을 배웅하며 또 하얀 봉투를 건넸다. 극구 사양하는 손들에 신랑이 준비한 거니 받아주라고 큰아버지가 거드셨다. 신랑의 일면이다. 낯선 예법이기도 하다.

인류는 인생의 중요한 시점마다 축복의 뜻을 담아 경건한 의식(儀式)을 만들어 냈고, 이웃들이, 그리고 대를 이어 반복하며 문화가 되었다. 이 문화는 의식(意識)의 폭을 지배한다. 나의 결혼식도 안전하게 그 안에 있었다. 그러나 현 세대에서 이 의식의 폭을 넓히는 창의적인 용기들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된다. 문화를 지키는 일만큼이나 다양한 시도와 존중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발전시킨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서도 스스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지혜를 가진 이 부부가 거친 세파에 쉽게 휩쓸리지 않을 것이며, 살면서 만나는 어떤 어려움도 당차게 헤쳐나갈 거란 믿음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가? 무엇보다 양가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격식과 체면에서 자유롭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먼일이지만 우리 아이의 결혼식도 생각해보았다. 고속도로를 거슬러 돌아오는 길에 잠시 소낙비가 스쳤다. 맑아진 하늘 아래 초록빛 봄이 더 말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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