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인연을 가슴에 담고
소중한 인연을 가슴에 담고
  • 김윤희<청주시 차량등록사업소>
  • 승인 2017.04.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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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김윤희

2016년 5월의 마지막 날. 오전 내내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장구봉을 올랐다. 조금은 더운 초여름 더위에 산책 겸 운동을 하고 있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시원한 사이다 같은 통화였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재취업을 하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재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의 전화를 받고 장구봉을 미친 듯이 달려 내려왔다.

청주시 차량등록사업소 검사팀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데 오늘이 원서 마감일이라고 빨리 와보라는 소식이었다. 서둘러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말끔히 차려입고 생전 처음 차량등록사업소를 방문해 서류를 제출하면서 면접도 보게 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업무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꼭 취업이 됐으면 하고 속으로 기도를 하며 결과 통보 전화를 받기까지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는지 모른다.

며칠이 지나 저녁밥을 지을 무렵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너무 좋아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자 무슨 일인지 알 턱이 없는 가족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시작된 차량등록사업소의 기간제 근무가 이제는 11개월이 됐다.

처음으로 해본 관공서 일이라 처음부터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자동차 저당 설정과 말소 업무였다. 새로운 용어를 이해하고 서류가 눈에 들어오기까지 마흔일곱 나이 먹어 녹슨 머리를 탓하며 배우고 또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류가 한눈에 들어오니 민원인에게 자세한 안내도 해줄 수 있게 되면서 저당 관련 일이 재미있어졌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이 어찌나 신나던지 새벽부터 서둘러 누구보다 먼저 사무실에 출근하게 됐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매일매일 출근하는 시간은 하루 중 제일 신나는 시간이었다.

한 번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심한 말로 항의하는 민원인 때문에 상처를 받는 일도 있었다. 저당을 말소할 때는 저당권자가 직접 방문해도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이 반드시 필요한데 저당권자 당사자가 왔는데 왜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받느냐며 엄청 큰 목소리로 항의하셔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또 다른 민원인들의 시선을 느끼며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저당을 잡을 때는 저당권설정자(차주)가 직접 방문하면 신분증만 있으면 사인으로 되는데 저당 말소 때는 저당권자가 직접 방문해도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요구하니 이해하기 어려우셨던 모양이다. 자동차 저당 업무를 보면서 저당 말소도 저당 설정과 마찬가지로 저당권자가 직접 방문하면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 사인만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던 경우다. 모든 일에는 필요하기 때문에 절차가 있지만 민원인이 편리하게 민원을 처리하게 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공서는 어렵고 딱딱한 공무원들만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관공서에서 기간제 일을 하며 현장에서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들을 보며 나랑 가까운 이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말로만 듣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돼보니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끔은 주민센터에서 왜 이리 늦느냐고 툴툴거렸던 내가 부끄럽기만 했다. 이곳도 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인데, 공무원도 똑같은 우리 이웃이었는데 말이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만난 따듯한 인연들을 가슴에 담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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