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앉은 별
내려앉은 별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7.04.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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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높다. 이렇게 높은 곳은 처음이다. 모두가 내 발아래 엎드려 있다. 앞에 보이는 우암산자락도, 옆의 백화산도 공손하게 엎드려 한껏 푸르러진 머리를 조아린다. 움직이는 것들의 대부분은 등을 보이고 공손하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직전, 짧은 시간에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이 경이롭다. 이내 땅거미가 내리고 어둠이 사방을 덮는다. 수많은 별이 빛나고 은하수가 흐르기 시작한다.

문우의 집이 늘 궁금했다. 카카오스토리에 수시로 올라오는 풍경과 동살이 내려앉은 여러 이름의 꽃들, 그렇게 높은 곳까지 찾아오는 벌과 풀씨들, 서쪽하늘의 노을, 온 시가지를 밝히는 화려한 불빛들이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이층 서재로 올라가면서 지나치는 자작나무숲이 궁금했다. 그러다 내 집 마당에 지천인 꽈리가 없다하니 좋은 핑계가 생겼다. 모든 것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좋다. 주인의 성격만큼이나 완벽하다. 차 한 잔 마시고 싶어 방문한 24층 아파트, 무엇보다 문우의 집에서 보는 별들의 향연이 따뜻한 차를 식기 전에 마시라는 재촉도 귓등으로 듣게 만든다. 도심에 내려앉은 별, 인공의 별들도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자동차의 행렬은 여러 곳으로 흐르는 은하수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시골에도 별이 많았다. 하늘의 별과 땅별이다. 전기도 없는 캄캄한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펴고 그 위에 얇은 이불을 깔고 누우면 온통 별이었다. 멀어서 아스라한 밤하늘의 별은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해서 별자리라곤 북두칠성밖에 몰라도 검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봤다. 그러다 마땅 끝, 텃논으로 눈길을 두면 주변의 어둠을 걷어내고 소리 없이 일렁거리던 반딧불이가 있었다. 땅별이다. 무명옷의 춤사위가 황홀했다. 어머니는 개똥벌레라 하고 고모는 반딧불이라고 했지만 나는 도시의 친척집 천정에 매달려 흔들거리던 백열등 같이 신기하기만 했다.

몇 년 전, 내몽골을 갔었다. 별을 보고 싶었다. 넓은 초원의 게르에서 묵던 날, 초원으로 나갔다. 손이 닿을 듯 머리 위에서 빛나던 수많은 별들은 광활한 어둠 속에서 적막했다. 별이 저렇게 많고 크게 보인다는 게 놀라웠다. 우주의 신비는 풍랑이 일던 마음을 잔잔하게 했다. 몇 날을 밤새도록 걸어도 좋은 것 같았다. 게르의 희미한 불빛을 가물거리게 하던 내몽골의 별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몽골의 별은 몽환적이고 문우 집에서 바라본 내려앉은 인공의 별들은 화려하다.

별은 스스로 빛은 내는 천체다. 내 주변에는 스스로 빛을 내며 내려앉은 별들이 많다. 꽃별이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다지와 돌나물꽃은 노란별이고 제비꽃과 봄까치꽃은 보라별이다. 지천인 냉이꽃은 흰 별로 반짝인다. 봄별이 지면 여름별이 뜨고 가을별이 뜬다. 작고 소소한 것들이 낮고 가까운 곳에 별천지를 만들어 눈 맞추고 향기를 맡고 만질 수 있어 좋다. 별로 말하자면 초대해준 문우도, 동행한 문우도 빛나는 별이다.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처럼 문득 생각나는 우리는 서로에게 내려앉은 별이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내 어깨 위에 내려앉은 작은 별, 나는 그별이 깨어 날까봐 밤새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란 동화가 마음을 두드린다. 고독과 외로움 속에 갇혀 있을 때, 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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