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7.04.26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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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오 태 환

삐뚜로만 피었다가 지는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백금(白金)의 물소리와 청금(靑金)의 새소리가 맡기고 간 자리 연분홍의 떼가, 저렇게 세살장지 미닫이문에 여닫이창까지 옻칠경대 빼닫이서랍까지 죄다 열어젖혀 버린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맨살로 삐뚜로만 삐뚜로만 저질러 놓고, 다시 소름같이 돋는 참 난처한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발바닥에서 겨드랑이까지 해끗한 달빛도 사늘한 그늘도 없는데, 맨몸으로 숭어리째 저질러놓고 호미걸이로 한사코 벼랑처럼 뛰어내리는 애먼 그리움, 천지간의 우수리, 금니(金泥)도 다 삭은 연분홍 연분홍떼의


# 천지를 환하게 밝히던 4월의 꽃 잔치도 끝물입니다. 연분홍 꽃 빛으로 마음 설레게 했던 복사꽃도 뚝뚝 바닥으로 내던져집니다. 연분홍 그 하나로 온통 속내를 열어젖힌 나무와 처연하게 내려앉는 꽃잎 떼의 바람이 자꾸만 눈길을 빼앗습니다. 덤처럼 찾아오는 낙화의 시간, 어떤 그리움이 이리도 처절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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