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수필
한줄 수필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7.04.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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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조명이 잉태한 빛은 화려했다. 빛은 하늘로 솟아오르기도 하고 바닷물에 안겨 너울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 빛의 축제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낮에 보고 느낀 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이래서 여수를 조명이 빚어내는 빛의 도시라 했나 보다.

공원도로변에 즐비한 포장마차가 불빛으로 유혹한다. 그 유혹을 마다할 리 없는 우리 부부다. 여행도중 느긋하게 남편과 술잔을 마주한 적이 얼마 만인가. 예전에는 왜 그리 쫓기듯 여행을 다녔는지 어쩌면 내가 짧은 시간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한 욕심 탓이었을 것이다.

처음 여행을 다니기로 계획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이제는 나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여행수필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설레기까지 했다.

내게 허락된 시간 1박2일, 많은 것을 보려 이곳저곳 스치듯 기웃거렸고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한 끼 해결하겠다고 맛 집을 찾아 긴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에 밀려다니듯 여행을 다닌 때문일까.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어 한 문장 이상을 이어가지 못하고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수없이 “좋다. 멋지다”를 외치며 감탄하던 그 감정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 노트북 수필 파일에는 그렇게 써놓은 여행수필이 꽤 여러 편 잠들어 있다. “여기는 하얀 포말이 쉼 없는 양양의 작은 어촌이다. 동백꽃 후드득 지는 길을 따라 나는 오늘 독일마을로 가는 중이다.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서해의 바다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식의 여행기가 매번 내가 쓸 수 있는 수필의 첫 줄이자 마지막 문장이었다. 부끄럽지만 차마 삭제할 수도 없는 그 글들에 “한 줄 수필”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도 모르는 채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저절로 영혼까지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던 나의 아둔함과 욕심이 만들어낸 씁쓸한 자화상이다.

이제는 여행을 떠나기 전 굳이 맛 집이나 많은 것을 검색하지 않는다. 대신 온몸의 감각기관을 열고 여행지의 낯선 시간, 낯선 향기를, 새로운 문화를 즐기며 느릿느릿 하루를 보낸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땍쥐베리는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는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암시일 것이다. 이제는 나도 지난날처럼 욕심을 부리지도 결코 서두르지도 않는다. 여행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는 여행수필은커녕 번번이 한 문장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한 줄 수필을 가끔 열어보며 자각한다. 지난날의 여행이 욕심과 허영으로 시작되고 스치듯 지나간 모든 것에 꿰맞추듯 억지로 큰 의미를 부여하려 했음을 인정한다.

남편이 따라주는 소주가 술잔에 찰랑거린다. 좁은 포장마차 안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도 옆 테이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함께 술잔에 찰랑거린다. “여보, 좋다”를 건배로 외치며 소주 한 병을 열병처럼 즐기는 우리 부부는 여행을 하면서 빈틈없이 빼곡하기만 했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여백을 조금씩 만들어 가는 중이다. 더디더라도 조금씩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간다면 내 한줄 수필도 언젠가는 감동을 주는 수필로 부활할 날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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