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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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팀장>
  • 승인 2017.04.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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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오늘 아침도 여지없이 옥상 행이다. 하늘을 보고 우암산 자락을 보고, 미세먼지가 없다 판단하면, 간장항아리 뚜껑을 연다. 미세먼지의 농도에 따라 뚜껑 자리가 바뀐다.

간장에 피는 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해 늘 항아리 뚜껑을 열고 닫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정성들인 간장 맛은 뒷맛이 달다. 색도 달다. 오가피 순을 따서 버무려 먹으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집 옥상이며, 집안, 마당의 장독대에 언젠가부터 항아리가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항아리에 매실, 오미자, 복분자, 보리수 청을 담고, 이어 다래, 두릅, 오가피 장아찌를 담더니, 이젠 된장, 간장을 담는다. 아무래도 유리병이나 플라스틱을 이용하는 것보다 발효도 잘되고 그래서인지 손님에게 내어준 음식은 늘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삿집에서 관리하기가 어려워 내다 버리기 아까운 것을 모아 시작했던 것이. 이젠 좋은 항아리를 찾아 구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해가 잘 드는 좋은 위치를 골라, 장독대를 만들고, 채우고 숙성시키는 기간 내내 행복한 시간이다. 장독대는 벌레가 오르다 햇볕을 이기지 못할 높이로 돌을 쌓아 만들고, 텃밭을 일구며 나온 잔돌을 고르게 깔고 항아리를 배치했다. 그 항아리엔 천일염도 넣어 간수를 빼기도 한다. 그 소금도 달다. 용도가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예전 할머니가 매일 독을 닦던 생각이 난다. 어느새 할머니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지 않은가. 뒤꼍 장독대, 돌담 밑 더덕순이 생각난다.

이제 집안의 모든 기물들에는 플라스틱이 사라진 지 오래다. 도마도 요즘은 만들어 사용한다. 캄포나무를 특히 많이 쓰는데 도마로 만들어 칼을 사용할 때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오래된 치료용 향유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전염병을 막아준다고도 한다. 실제 나무를 만지다 보면 상쾌하고 맑은 향이 올라온다. 코끝을 자극하고 몸속으로 들어간다. 피톤치드가 방출되는 것인데, 항세균, 항박테리아 작용이 있다. 호주에서만 자라는 이 캄포나무는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것들이다. 칼자국이 많이 나서 보기에 안 좋다 생각되면 사포로 몇 번 문지르고 사용하다 보니 오래도록 쓰면서 멋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멋진 도마다. 나뭇결도 다르고, 색감이 달라 미적인 만족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편백, 캄포, 티크, 올리브나무 등 다양한 나무로 도마를 만들어, 빵과 치즈를 올릴 때나 칼도마로 골라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든 게 전통의 재료를 통해 얻은 것들이 일상생활과 함께한다. 삼겹살을 올리는 것도 달군 돌판으로 바꾸었다. 고기의 온기가 오래간다. 손님이 많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접시를 쓰지만, 시간의 흐름에 기름이 엉겨 붙는 현상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항아리의 과학적 기능뿐만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대접하는 음식을 담아내는 가치, 오랜 시간 맛의 깊이 감을 배가시키는 숙성에 대한 가치, 그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려 주고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지속성의 가치를 갖는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도마의 칼질을 하는 손목에 대한 배려, 사용되는 식재료에 대한 오염도를 고려한 기물이다. 오래 사용되어 버려진다 싶지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토양과 거름이 되는 것이다.

공예란 전통과 자연에 대한 감성,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온전히 자연에서 얻어지고 지속적이며 순환적인 과정을 통해 늘 인간이라는 존재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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