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미달 안보논쟁
수준 미달 안보논쟁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4.2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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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위정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사력을 확충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民信)이다”. 이 가운데 부득이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부터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다시 답했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달랐다.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 먼저 군사력을 버려야 하고 다음이 식량이며, 백성의 신뢰는 마지막까지 지켜야 한다”. 당시는 중원의 패권을 놓고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전쟁을 거듭하며 각축을 벌이던 춘추시대였다.

공자는 약육강식의 룰이 지배하는 살벌한 시대에도 국방과 경제보다 지도자의 신뢰를 우위에 뒀다. 백성이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나라의 국방과 경제가 흔들릴 리 없다는 것이 공자의 논지일 터다.

표에 혈안이 된 대선 후보들의 진흙탕 싸움를 보면 촛불혁명으로 진일보한 시민정신과 달리 정치는 오히려 퇴보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네거티브 없이 정책대결로 승부를 내겠다던 애초의 다짐들은 공염불이 된지 오래다. 그나마 내놓은 일자리와 복지 공약들은 실현성이 떨어지는 날탕이 대부분이다. 후보들마다 복지 강화를 위한 부자증세를 합창하고 있으나 구체적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 마련을 위해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꾸리겠다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토론회 발언은 압권이다. 공약이 유권자의 불신을 받다보니 후보들은 네거티브와 이념공세, 지역감정 등 전근대적 전략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핵 도발과 항공모함을 동원한 미국의 대응, 사드를 둘러싼 국내·외 갈등 등으로 한반도는 전례없는 위기를 맞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가 선거 쟁점으로 부상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은 어느 후보가 난국에서 국가의 위상을 바로세우고 한반도를 안정시킬 안보역량을 갖고있느냐가 돼야한다. 한참 전 과거사를 드러내 이념적 혐의 씌우기에 급급한 지금의 공방전은 정책 대결은 물론 후보자 검증으로 보기도 어렵다.

특히 문재인 후보를 타깃으로 한 안보논쟁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 국방정책의 근간이 북의 도발에 대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적을 꼽으라면 북한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화와 타협, 설득을 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통령이 북한이 주적이라는 명약관화 한 사실을 굳이 공개적으로 천명해 갈등을 키우고 대화 여지를 위축시키는 것은 무익할 수도 있다. 주적 규정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라는 문 후보의 주장이 이런 취지였다면 친북 발언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다. 설득력 떨어지는 언변을 탓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과 관련한 논란도 이젠 좀더 신선하고 생산적인 의제로 대체됐으면 좋겠다.

우리 정부가 기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먼저 물어보고 그들의 뜻을 따랐다는 주장과 결정 후 북의 의중을 파악했을 뿐이라는 반박이 대립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 후보가 북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자는 주장을 주도했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북의 의사를 좇았고, 그 과정에 문 후보가 앞장선 것이 사실이라면 경위를 밝힐 일이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고 사실관계를 확증할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이쯤에서는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당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있는 지금과는 달랐다. 남북 정상회담을 한 직후라 한반도는 해빙 무드에 접어들어 있었다. 우리 정부로서도 그런 분위기와 관계를 유지하고픈 시기였다. 북이 신경을 곤두세운 유엔의 인권결의안에 정부가 기권한 것은 대의를 좇기만은 어려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납득할만한 선택이었다.

그제 나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한국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를 최악으로 평가했다. OECD 47개국 중 46등이다. 과도한 공부시간과 성적 스트레스가 요인으로 꼽혔다. 새삼스러운 수치가 아니다. 국제기구가 행복지수를 조사할 때마다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OECD에서 바닥 수준이다. 안보는 국민이 조국을 목숨바쳐 수호할 가치있는 공동체로 인식할 때 굳건히 뿌리 내릴 수 있다. 국민이 행복하지않은 나라에서 온전한 국가관이 배양되기 어렵다. 공자가 `나라가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 국방을 든든히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정으로 안보를 걱정하는 후보라면 국민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고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정책 발굴에 매진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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