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쉬어 가면 되지
힘들면 쉬어 가면 되지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4.23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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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채 10여 분 정도 걸었을까. 정강이가 아프다.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하고 잠시 쉬었다가 걸어도 통증이 여전하다.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져 그런가? 준비 운동 없이 출발한 부작용인가?

오늘 산행은 용대리에서 시작해 백담사를 지나 봉정암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 백담사까지 7㎣가 넘고, 중간 집결지인 영시암까지도 11㎣나 된다. 갈 길은 먼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이왕 늦은 김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 길모퉁이에 주춤 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등산화 끈을 고쳐 맨다.

깜깜한 새벽에 혼자 걷는 것 자체가 고행이다. 발에 쇠뭉치를 매단 몸이니 어이할까. 속도를 내면 낼수록 발등의 통증도 비례한다. 암흑, 절망이라는 단어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새소리가 감미로울 리 없다.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주인을 잘못 만나 길을 더듬는 헤드 랜턴의 불빛마저 애처롭다.

사람의 행동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욕망을 분출한다. 내재한 욕망을 행동에 옮긴다. 신발끈이 거슬린다. 저녁 늦게 잠들어도 출근 시간에 맞춰 눈 떠지듯, 배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식당으로 몰려가듯 등산화에 자꾸만 눈이 간다. 끈을 다시 고쳐 맨다.

오늘의 산행은 족히 10여 시간이 넘는다. 더군다나 험한 봉우리와 절벽을 오르내려야 한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마음의 부담이 컸나 보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일행들과 함께하지 못할까 하는 불안감이 일었나 보다. 가는 길에 나로 인해 불편을 주거나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으로 나 자신을 옭아맸나 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얻고 싶어 한다. 지식을 받아들이고 내재화해 행동에 옮긴다. 그렇게 획득한 경험은 옳고 그름을 떠나 소중한 자산으로 여긴다. 진실이 왜곡되는데도, 무지가 한몫하는데도 많은 것을 얻은 자신에 대해 흐뭇해한다. 어지간한 일로 큰일을 만들지 말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아야 하는데, 완벽만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끈의 인연으로 살지만 때로는 그 끈을 느슨하게 풀어줘야 할 때가 있다. 당길 때 당기더라도 가끔은 놓아주는 그런 사람이 좋다. 등산화 끈을 정도껏 매어야 하는데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발등의 자유로움마저 허락하지 않은 오늘 같은 날들…. 그 질긴 끈으로 나 자신을 묶고 옆 사람을 묶고 상대방을 묶어 왔나 보다.

두렵고 고통스럽더라도 꼭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를 옭아매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옭아매지 못한다. 좀 느리게 걸으면 어떻고 남이 나보다 빨리 정상에 오르면 또 어떤가. 걷다가 불편하면 누구라도 와 부축해 주고, 걷기 힘들다고 하면 손잡아 줄 텐데 괜한 걱정을 했던 하루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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