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엔 사람의 향기가 있다
거기엔 사람의 향기가 있다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4.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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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사무실 창문 너머로 신명난 농악 장단이 울려 퍼지고 주민들은 하던 일 멈추고 풍악에 홀리어 모여들고 있었다. 농악 상쇠놀음에 어깨를 들썩이는 주민들은 상쇠의 발걸음과 치배 장단에 흥에 겨워 얼쑤, 절쑤 추임새를 넣어가며 농악마당이 한판 벌어졌다. 재래시장 활성화로 시장이 현대화로 변모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아치형 지붕이 완공, 새롭게 변신하여 개막을 하는 날 잔치가 벌어진 거다.

풍물패의 삼색 띠가 휘모리장단에 빠르게 허리춤에서 춤사위가 펼쳐지고, 현란한 상쇠의 꽹과리 장단과 발 디딤, 살짝 치켜 올라간 미투리 코는 하늘을 날 기세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인간이 있다는 뜻을 지닌 허리춤에 들썩이는 삼색 띠, 천지인을 뜻하는 색으로 天-청색, 地-황색, 人-적색 삼색 띠와 한몸인 상쇠 춤사위와 주민들의 춤사위가 어우러져 화려한 장을 연다.

시장 한복판 지폐를 잔뜩 물고선 만족스럽게 지그시 두 눈을 감은 돼지머리 앞에 모두가 넙죽 절들을 하느라 웃음꽃이 지질 않는다. 옛날 옥황상제 부하 중 `업'장군과 `복'장군이 있었다. 두 장군이 서로 다투자 옥황상제는 탑 쌓는 시합을 제안해 승자를 가까이하겠다고 선포를 했다. `업'장군이 잔꾀를 부려 승리하자 옥황상제는 `복'장군이 계속 당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복'장군을 돼지로 환생하게 했다. 그리고 인간들이 하늘에 소원을 빌 때 중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고 한다. 훗날 인간들은 하늘과 중개할 권한이 있는 돼지머리를 고사에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돼지 돈(豚)'자는 `돈'과 같은 소리를 내고,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는다. 때문에 다산과 부귀영화를 누리기 바라는 마음으로 돼지머리를 올려 고사를 지내니 모두가 신명이 날수밖에. 상쇠는 넓은 대접에 막걸리를 따르고 새끼손가락으로 휘저어야 제 맛이라며 휘휘 젓고 잔을 돌린다. 모두가 고사떡에 막걸리로 축배를 들고나니 화사하게 홍조 띤 얼굴은 또다시 풍악을 울려 노구의 어깨까지 들썩이게 하며 신바람 난 한마당이 벌어진다.

상쇄 잡이 선배는 뒤늦게 국악에 발을 들여놓은 늦깎이다. 시도 때도 없이 달아오르는 안면홍조와 발한으로 등줄기에 흘러내리는 땀방울들, 한겨울에도 손끝에 부채를 달고 다닐 정도로 갱년기 증상이 심해져 일상생활이 짜증나고 의욕이 없었단다.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던 갱년기, 수시로 심장박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갱년기에 명약은 없고, 좋다는 건강보조식품 민간요법을 써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때 갱년기로부터 집 밖으로 끌어낸 것이 국악이었다. 휘모리, 자진모리 굿거리장단은 물론 용어, 타법까지 생소한 국악이지만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로 북과 장구 그리고 꽹과리 타법까지 익히면서 흘린 땀만큼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갱년기를 잊게 되었다.

신세대 아이돌의 힙합댄스처럼 섹시하고 반짝이의상과 랩을 동반한 리듬감 그리고 힙합 특유의 현란한 동작은 아니어도 느린 듯, 빠른 듯 흥겹고 신명나는 농악, 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심장을 뛰게 하고, 함께한 농악패는 모든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며 흥에 취하게 한다. 그 맛, 그 매력에 매료되어 선배는 농악 장단에 맞춰 심장이 함께 뛸 때 행복하다고 한다. 섬을 향해 끝없이 펄럭이는 배의 힘찬 돛처럼 생기가 넘치는 선배는 그렇게 갱년기를 극복하고 끝없는 항해를 하고 있었다. 퓨전이 대세인 것처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재래시장, 일상에 흩뿌려진 농축된 삶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삶의 일기장 같은 곳이다.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시대지만 백년, 천 년이 지나도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문화유산처럼 삶의 터전인 재래시장은 농악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처럼 삶의 향기가 묻어나고 공존하는 곳이다. 그렇게 한바탕 어우러진 마당놀이가 끝난 시장에도 어둠이 내리고 전등이 불을 밝힌다.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농악소리는 무아(無我)의 세상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고 있었다. 가만,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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