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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진 자리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수필가>l승인2017.04.21l수정2017.04.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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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순<수필가>

바람에 벚꽃 잎이 난분분하다. 길을 걷는다. 바닥은 하얀 꽃잎들이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나무에서는 연분홍빛이더니 떨어져선 하얀 낯빛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고통은 꽃잎만의 몫이 아니었다. 나무에 남아있던 꽃대궁을 들여다보니 꽃잎이 진 자리에는 붉은 수술들이 바람에 떨고 있었다. 자신들을 감싸주던 꽃잎과의 이별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와 몇 년 전 여행을 갔었다. 그때도 4월의 끝 어느 날이었을 것으로 짐작 된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이니 이왕이면 꽃이 많이 핀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운전은 내가 하기로 하고 목적지는 거제도의 외도로 방향을 잡았다. 외도에 도착한 우리는 난감했다. 꽃이 많은 곳을 보기 위해서는 급경사인 오르막길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어머니는 겨우겨우 올라간 언덕배기의 꽃을 보고도 시큰둥하셨다. 언덕을 오르시느라 체력을 다 소모하셨던 탓에 꽃이 눈에 들어 올리 만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것 같아 우리는 바로 내려 와야만 했다. 어머니는 바닷속 길인 `가거대교'를 보여드려도 좋아 하지 않으셨다.

정작 어머니가 벙글벙글 웃으시며 “좋다 좋아”하셨던 것은 진해를 지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꽃이 좋다, 어쩜 저리 꽃이 좋으냐?” 하시며 창밖의 벚나무 가로수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고 붙박이를 하셨다. 언니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나무에는 이미 벚꽃이 다지고 난 후였다. 벚나무는 붉은 수술만을 단 꽃 대궁만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꽃인 듯 생각을 하시는 듯 했다. 그때 어머니는 백내장이 깊이 진행되어 시야가 흐릿해 색깔만으로 추측을 하셨던것 같다. 쇠약한 어머니에게 백내장 수술은 무리였다. 수술도 못해드린 것이 죄스러워 언니와 나는 그날, 정말 꽃이 좋다며 어머니에게 맞장구를 쳐 드렸다. 그리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누구나 화려한 꽃 시절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리 화려한 꽃일지라도 지는 순간도 있게 된다. 하지만 꽃이 진다하여 서러운 일 또한 아니다. 꽃이 진자리는 수술이 남아 다시 또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이고 언젠가는 열매가 되어 지나간 이별의 순간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열매가 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 된다.

요즘 목포에는 노란 꽃물결이 넘실댄다고 한다. 그것은 꽃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세월호의 아이들을 향한 목포 시민들이 준비한 마음의 꽃이리라.

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세상의 무서운 비바람을 감싸줄 따뜻한 빛이 있어야 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벚꽃과 함께 4월이 지나면 장미꽃이 피는 5월이 온다. 5월은 `장미대선'이 있는 달, 부디 국민들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어 줄 지도자가 당선되었으면 하고 소원해 본다.

꽃이 피고 졌다. 그리고 또 꽃이 피려한다. 늙으신 어머니가 벙긋거리며 내 곁을 함께 걸으신다. 꽃 진 자리, 그곳엔 작은 희망들이 붉게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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