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꼰대論
좌 꼰대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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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나이와 지위를 앞세워 자기를 함부로 드러내는 이를 꼰대라 한다.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통곡하거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아예 부정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상식과 시대정신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주름과 함께 축적된 경험과 믿음을 아무에게나 강요하고 여의치 않으면 화를 내거나 덤벼들기도 한다. 반대 의견은 빨갱이로 몰아 적으로 만드는데 가족이나 친구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면 나도 그들의 적이 된다는 사실을 이들은 깨닫지 못한다.

이들과 조금 다른 꼰대가 있다. 자기주장이 강한 건 정통 꼰대와 비슷하지만 개혁과 진보를 표면에 내세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좌 꼰대」쯤 되겠다. 말하고 생각하는 건 딱 좌파인데 행동하는 건 우파 꼰대와 비슷하다. 체제에 대한 불신이 강해 비판에만 능할 뿐 실천력은 떨어진다. 자기 딴에는 불의에 저항해 열심히 싸운다지만 대중의 공감을 크게 얻지는 못한다. 투쟁 과정에서 자기 성찰이 부족하고 말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아들이 술주정하는 아버지를 저주하며 닮아가듯 좌 꼰대 역시 타락한 권력에 맞서다 점차 동화된다.

사람이 본래 보수적인 동물이라 변화 자체를 싫어한다. 가뭄이나 기근, 적의 침입 같은 위험 요소가 없으면 삶의 터전과 방식을 함부로 옮기거나 바꾸지 않는다. 절박함이 아니면 식솔을 거느리고 위험한 개척의 길을 떠나지도 않는다. 이러한 본성을 정치 논리로 구분하자면 보수 우파쯤 되겠다. 보수적인 다수를 설득해 뭔가를 바꾸려는 좌파에겐 특별한 무기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도덕성이다. 모든 개혁의 동력은 능력이 아니라 도덕성에서 비롯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세상은 도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가 그것 때문에 몰락했다.

입으로는 누구나 좌파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좌파로 살기란 쉽지 않다. 주식투자로 돈을 벌어도 좌파는 함부로 웃으면 안 된다. 그 돈을 잃은 누군가는 가정이 해체되거나 극단적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으니까. 어느 경제 전문 기자의 말처럼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 이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 때문은 아닌지 좌파는 부단히 주위를 살펴야 한다. 자본이 행복을 결정하는 사회 구조에서 실천하기 쉽지 않지만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은 자신의 행복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 도덕성이 좌파의 숙명이기에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좌파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우파 꼰대보다 더 해로운 이유는 좌파 전체에 해악을 끼쳐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데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말하기도 쉽지 않지만 지난 진보 정권의 몰락에는 좌파들의 꼰대질이 한몫했다. 경쟁과 발전을 중요시하는 우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좌파들 때문에 대중의 신망이 돌아섰으리라. 집권 초기에 신선했던 좌파들이 권력을 가진 후 우파들처럼 변화를 두려워했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벚꽃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선 주자들의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차들이 많이 몰리는 교차로에선 정당의 티셔츠를 갖춰 입은 선거 운동원들의 춤이 색깔별로 쑥스럽다.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는 게 다수 언론의 예상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치적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고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돌보라.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지 못하면 새로운 정권의 모든 정치는 좌파의 꼰대질에 불과할 것이다.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은 부디 새겨들으시라. 이것이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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