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이 상 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 시를 읽으면서 눈앞 장면처럼 선합니다. 측은한 어른의 얼굴에 와서 박히는 어린아이의 똘망한 눈망울까지 그려집니다. 어떤 불리한 상황도 굴곡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게 어린아이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실이니까요. 예닐곱 아이에게서 자신에게 당당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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