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설화와 정이품송
속리산 법주사 설화와 정이품송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 승인 2017.04.1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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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역사기행
▲ 김명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자연 속에서 지도자의 품성을 키우는 뜻깊은 간부수련회를 올해도 속리산으로 다녀왔다. 학기 초에 `소통하는 리더, 섬김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1박2일 동안 속리산에 있는 수련원에서 학급의 반장과 부반장, 학생회 임원들이 새로운 다짐과 약속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해마다 속리산으로 수련회를 가는 이유가 있다. 속리산은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하며,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 경계에 걸쳐 있으며, 이곳에는 호서에서 제일 큰 사찰인 법주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주사가 처음 세워지던 때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금산사에서 정진수도 하던 진표율사가 보은에 가까이 왔을 때,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일을 멈추고 모두 무릎을 꿇고 스님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기이한 광경을 본 농부들도 일을 멈추고 진표율사에게 달려가서 절을 한 후 소들이 이렇게 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율사는 “이 소들이 겉으로는 어리석으나 속으로는 현명하여 내가 깨우친 불법을 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농부들이 자신들이 소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곧바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낫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진표율사의 제자가 되어 속리산으로 들어왔고, 법주사를 창건하여 오늘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속리산의 봉우리와 바위마다 다양한 설화가 전한다. 바위 봉우리에 수많은 학이 날아오르며 춤을 추는 곳에 신선들이 앉아 놀았다는 신선대가 있다. 신라 진평왕의 왕비인 마야부인이 서라벌을 향해 기도를 올린 입석대와 진평왕이 이곳에서 신라 왕실을 배향했다는 배석대가 있다. 그리고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수련했다고 전해지는 바위 경업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속리산에는 조선시대 세조와 관련해서 다양한 설화가 전해온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삼촌 세조는 꿈에 형수가 뱉은 침이 묻은 피부에 헌데가 나고 고름이 생기는 피부병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세조는 이 악질을 고치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찾아 병이 치유되기를 기도했는데, 영험한 효과가 있는 보은 속리산의 복천암에까지 오게 되었다.

보은읍에서 속리산으로 향하던 중 길을 막고 있는 소나무가 있었다. 임금의 가마가 이 소나무 가지에 걸릴듯해 가마꾼들이 일제히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임금님의 가마가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지금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송은 법주사 소유로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15m의 높이에 나무의 둘레가 4.5m이고, 가지의 길이가 동서남북으로 10m 정도인 정이품송은 수백년의 세월이 무색하다. 하늘로 곧게 뻗은 모습이 우산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고 기상이 웅장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정이품송 앞에서 우리 교육을 생각해 본다. “참 잘 컸다.” “참 멋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름 없는 나무도 사연을 가지게 되면 몇백년을 이렇게 당당하고 멋지게 자리를 지킨다. 천하보다 귀한 우리 아이들 모두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실력 있고, 진취적이며 당당한 사람으로 커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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