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로 위협하는 세상을 가리는 손
묻지마로 위협하는 세상을 가리는 손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4.18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 정규호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이라,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지는 법.

존재와 부재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방법으로 차용된 예의범절은 꽤 오랫동안 안과 밖, 그리고 가족과 타인의 차이를 가르는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

나갈 때 알리는 일과 돌아오면 얼굴을 반드시 보여야 하는 일은, 있고 없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며 형상을 통해 확인하는 확정된 이미지이다. 울타리 안에 포함되거나 그렇지 않음을 구분함으로써 연대를 강화하는 이런 예의범절은 존재의 확인을 통한 안녕의 유무를 떠나 이미 낡은 유물처럼, 전근대의 구습으로 치부되며 지켜지지 않은 지 오래다.

뚜렷한 현상으로 구분되는 있고 없음과 (가족과 집단 등)경계의 구획이 무너진 세상이 그렇다고 더 큰 울타리를 만들면서 우리를 지켜줄 힘을 얻고 있는가.

그럼에도 김애란의 소설 <가리는 손> (창작과 비평 2017년 봄호)은 첨단 디지털 세상에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유무와 face to face의 현상적 믿음이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세태를 말한다.

싱글 맘인 주인공은 충격적인 동영상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며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음소거 상태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유일한 혈육 `재희'의 일탈은 불안하다. 주인공은 우럭 뼈를 푹 고아 국물을 낸 뒤, 그것으로 생일 미역국을 끓여내는 정성을 들일 만큼 `재희'가 간절하다. 그날 그녀는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동영상으로 인해 더욱 살 떨리는 두려움과 불안이 포함된 애절함이다.

(동영상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은 남자 셋, 여자 하나, 십대 아이들 네 명에게 묻지 마 폭력을 당한다. 노인은 병원에서 숨졌는데, 동영상에 `재희'가 있다. 다행히(?) 목격자인 `재희'는 그러나 쓰러진 노인을 구하지 않고, 인형 뽑기 기계 앞에 두고 간 인형만을 챙겨 사라진다.

소설 <가리는 손>의 핵심 사건은 이것뿐이다. 구구절절 주인공의 배경과 생활의 흔적을 구현하지만 거짓말, 모녀로 이어지는 싱글맘 세대, 그리고 노인을 비하하는 유행어 `틀딱'(틀니 딱딱의 줄임 말, 노인을 비하하는 청소년들의 속어. 편집자 주)이 묘사될 뿐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헛헛하지 않고 비수처럼 날카롭다.

김애란은 소설<가리는 손>에서 직접 언급한다.

“애가 어릴 때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아직까진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모바일 게임에,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즐겨 보는 정도나, 가끔은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중략) 지금은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굳이 `옥상으로 올라와'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니까. 아이가 나와 식사를 하는 중에도 누군가에게 얻어맞으며 피 흘릴지 몰랐다”라고.

극단으로 치닫는 세대 간의 간극과 대립, 불특정인에게 별다른 이유없이 자행되는 묻지마식 폭력, 인형 뽑기에 매몰되어 성취에 대한 간절함을 불태우는 절망과 가벼움, 싱글맘의 힘겨운 육아, SNS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간 군상, 약자에 대한 학대와 구호의 외면, 그리고 존재와 허상은 물론 안과 밖을 구별하기 힘든 세상의 감시와 간섭 등. 25쪽 분량의 단편소설 <가리는 손>에는 너무도 많은 이 시대의 부조리가 담겨 있다.

이 모든 허물은 결국 사람들이 본질을 외면하거나, 근본적인 성찰을 회피하는 데서 비롯된다.

당초보다 159억원이 늘어 나 무려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하고 약속받은 혐의로 전 대통령이 기소되는, 각종 비리와 몰상식이 판을 치던 나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는 절실한 의미가, 국민의 촛불에 의해 만들어진 장미대선의 본질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같다.

인터넷, SNS,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아야 할 이유는 그래서 더 분명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