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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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민<청주시 서원구 세무과 주무관>
  • 승인 2017.04.1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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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김정민

흔히 `독서의 계절'하면 가을을 떠올리지만,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봄 역시 책을 읽기 딱 좋은 계절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새싹들이 생각나는 마치 초봄과 같은 이미지의 좋은 책이 있어 함께 나누고자 글을 쓴다.

바로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生(생)'이라는 책이다. 라디오에서였나? 어디에선가 평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문학상이 있는데 유일하게 두 번 받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도대체 글을 얼마나 잘 썼기에 두 번이나 받았다는 거지?'하는 생각에 검증을 해봐야겠다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책을 구입했는데 읽고 나니 충분히 납득이 갔다. 웬만해서는 한 번 본 책은 다시 읽지 않는데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됐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속 제제와 꼭 닮은, 너무 빨리 삶의 슬픔을 알아버린 열 살 소년(실제로는 열네 살) `모하메드'이다. 모하메드는 `모모'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러나 귀여운 애칭과 달리 모모를 둘러싼 환경은 열악하다. 몸으로 벌어 먹고사는 이들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의 집에서 살며, 부모가 누구인지 심지어 본인의 나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버려진 수많은 아이 중 하나로 자랄 뿐이다.

평화로운 일상은 로자 아줌마가 치매에 걸리게 되면서 깨지게 된다.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대소변조차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로자 아줌마의 곁에는 모모만이 남게 된다. 점점 더 기괴한 행동을 하는 로자 아줌마에게 충격을 받은 모모는 그녀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 줄 이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금세 로자 아줌마의 곁으로 돌아와 그녀를 보살핀다. 순간순간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서 쓸쓸하고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두렵다며 병원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마을 의사에 의해 입원을 강요받게 되자 모모는 그녀를 위해 아줌마의 친척들이 와 그녀를 고향으로 데려가기로 했다면서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는 `유태인 동굴'이라 칭한 둘만의 비밀 장소인 지하실로 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자 아줌마는 숨을 거둔다. 모모는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주고, 향수를 잔뜩 뿌려준다. 아무리 향수를 뿌려도 악취를 감출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극심한 악취의 원인을 찾으러 온 이웃들에 의해 무려 3주 만에 발견돼 구급차에 실려 가게 되고, 새로운 가정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아프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된다. 아마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이며, 이들이 서로 배려하며 돕고 살아가는 모습이 꼭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연말이면 종종 뉴스에 나오는 폐지 줍는 할머니가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소식처럼.

`자기 앞의 生(생)!'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제목을 참 잘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펼쳐져버린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이제 막 자신의 길을 그려나가기 시작한 모모의 모습이 보인다. 겨우 책 한 권이지만 읽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나른한 오후, 오랜만에 책과 함께 사색에 잠기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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