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대표인물 오리(梧里) 이원익
청백리의 대표인물 오리(梧里) 이원익
  • 염보람<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 승인 2017.04.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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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염보람<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은 누가 있을까. 이황, 황희, 맹사성 정도일까.

청백리를 검색해 보면 총 217명의 청백리를 찾을 수 있는데 이 중 대표인물로 꼭 언급되는 분이 바로 오리(梧里) 이원익이다. 이황, 황희 못지않게 임금의 신뢰와 백성의 존경을 받았지만 그 공적과 명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원익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원익은 조선시대 관료의 표상과도 같은 인물로 격렬했던 당쟁의 시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일호의 오점을 남기지 않고 모범적인 관료 생활을 했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력의 기반을 다졌으며, 도체찰사로 전쟁을 수행할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가장 큰 공적으로는 대동법을 꼽을 수 있는데, 수많은 기득권층의 반대에 부딪혀 가면서 조선시대 공납제도를 근원적으로 개혁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업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성품은 율곡 이이가 추천할 정도로 그의 업적 못지않게 더 존경받아 마땅했다.

이원익은 1601년(선조 34년) 청백리로 뽑혔다. 청백리란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 근검, 도덕, 경효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의정부에서 뽑은 관직자에게 주어진 호칭이다. 그는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의 최고 책임자인 영의정을 여섯 번, 전쟁 시 군무를 맡는 최고 직책인 도체찰사를 네 번이나 지냈지만 재산이라곤 쓰러져가는 초가 한 채뿐이었다. 그의 청백한 삶은 당대에는 집안 경영의 원칙이었고, 사후에는 오리집안의 가풍으로 발전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이원익 종가에서 만든 전국 유일의 종가박물관인 충현박물관이 있다. 선대의 유품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계승·보호한다는 이념 아래 건립한 곳이다.

조선 인조가 지어 하사한 집 관감당, 종가 등을 모두 포함해 박물관으로 칭하고 있다. 관감당은 조선시대 임금이 하사한 사택 중 현재 유일하게 보존돼 있는 곳이며, 관감이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다'라는 뜻으로 인조가 “내가 집을 하사하는 이유는 신민들이 그대 청백리의 삶의 자세를 보고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관감당은 이원익의 청백리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0호로 지정돼 있다.

청주시에서도 청렴라디오방송, 청렴도서읽기운동, 청렴교육, 청렴공모전, 청렴마일리지, 등 청렴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당구에서 최근에 시행된 청렴라디오방송은, 근무시작 전 10여 분간을 활용해 `청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주 1회 방송하는 것이다. 일일 DJ가 된 직원은 각자 개성을 살려 녹음하고, 다른 직원들은 그 방송을 들음으로써 청렴 의식 고취에 한 발짝씩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청렴의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이원익의 청렴 정신을 본받아 현시대 공직사회 곳곳에도 청백리정신이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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