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맹랑한 시선
허무맹랑한 시선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4.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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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흠잡을 데가 없이 때깔이 좋다. 눈으로 먹었더니 침이 그득 고인다. 홍옥 무더기 옆에는 허섭스레기 사과를 뭉뚱그려 팔고 있었다. 그중에는 머드러기도 있는데 때깔이 아니다. 홍옥의 반값에, 양은 두 배로, 맛은 한 수 위라고 해도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시선을 붙들지 못했다.

텅 빈 과수원에 남겨진 그 허섭스레기를 찾아드는 날짐승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눈과 달라서 진가를 알아보았는지 몰려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에게 선택되었더라면 한층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을 텐데 까치의 위장으로 들어갔으니 날짐승밖에 되지 못했다. 난전에 간신히 나온 사과는 그중에서도 조금 나은 놈이다.

보는 눈이 있으면 저를 거두어가겠거니 하고 태평스럽지만, 사람들은 `너도 사과냐?' 하고 외면해버린다. 더구나 비교 대상이 곁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니 홍옥이 서푼이라면 채 한 푼의 값어치도 아니 보이는 것이다.

주인의 관심 밖에서 애써 익었다. 잘난 놈의 질시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묵묵히 속을 채웠으리라. 가장 깨끗하고 고상한 시선에 붙들리기를 고대하면서 여기까지 왔을는지도 모른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그 사과 앞에 섰다. 주인은 홍옥 앞에 서 있는 대여섯 사람이 우선순위인 듯 눈길을 채 주지 못하는데 구수한 사투리로 값을 물으신다.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께서 가난한 지갑을 여는 모습을 상상했다.

고운 색깔까지 먹고 싶어 정성스레 닦는데 끈적끈적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광택제에 절였는지 식초와 세제도 무용지물이다. 껍질을 깎았더니 맛도 맹탕이라 실망하고 말았다. 겉치레만 보고 혹한 내 실수였다. 사과 한 무더기에 그쳤다면 다행이련만 세상을 보는 눈도 그것밖에 되지 못했다. 지금도 허무맹랑한 내 안목에 놀랄 때가 있지만 갓 서른일 때 이야기다.

대체로 과일은 작고 못생긴 것이 더 달콤하다. 때깔이 좋은 것은 아주 맹탕일 때도 있고 달아도 깊이가 덜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크고 때깔 고운 과일이나 채소는 거부감이 앞선다. 얼마나 많은 농약을 품고 있을까 하는 의심도 품게 된다.

연륜이 주는 안목은 보고 익힐 수가 없다. 할머니의 차림새와 싸구려 과일 앞에 섰다는 이유로 가난한 지갑에 초점을 맞춘 그때의 내 안목은 나이만큼만 자랐었나 보다. 할머니는 겉치레의 허무맹랑함을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필경 사람 보는데도 높은 안목을 가지셨을 게다. 지위와 인격이 비례하지 않고, 명예와 재물이 영원한 것도 아니며, 더구나 그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임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이순에 들었다. 귀가 순해지니 안목도 진중하게 깊이를 더 할 나이다. 사람들은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장담을 하는데 나는 짐작과 어긋날 때가 많다. 실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놓고 안목이라 함은 교만이 아닐까?

못생겼으나 달콤한 사과가 좋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명예와 재화까지 갖추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속이 꽉 찬 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행복하다. 그런 이는 두루 세상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추측이 난무하는 세태에 못난 시선을 내리깔고 자성을 해야겠다. 허리가 반으로 꺾일 즈음이면 세상을 보는데 일가견이 생기려나. 사과를 고르는데도 척 보면 알 수 있고 요지경 속에서도 갈피를 잡는 고상한 안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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