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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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아
한 신 구 <수필가>

가녀린 갈대들이 무리지어 있는 강가에는 가끔씩 몰려오는 바람에 몸을 떨며 서걱이는 마른 몸무림만 있었다. 연둣빛 봄날과 지루하던 여름, 결실의 환희 벅차던 가을을 보내고 이제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며 나지막하게 희로애락을 수런대는 갈대들. 정적이 흐르고, 저 멀리 철새들이 날아가고, 원두막 위로 넘어가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우린 참 오랜만에 따스한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여고 입학시험장. 너비뛰기 연습을 하는 내게 다가 온 키가 크고 눈이 커다란 낯선 아이. 시골에서 온 나를 도와준 그 아이는 같은 반이 되었고, 작은 나와는 멀리 떨어져 앉아 눈으로만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청소시간마다 뿌옇게 앉은 속눈썹 위의 먼지를 떨어주며 깔깔거렸고, 둘이 구석을 쓸며 서로 마음이 통하여 갔다.

장학금으로 학업을 이어가야 했던 우린 동병상련을 앓았고, 틈만 나면 벤치에 앉아 꿈과 우정을 키워 갔다. 다행히 진학도 같은 학교로 하고, 몸이 안 좋아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을 때에는 우리집에 머물게 되어 밤낮을 함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했다. 생에 대한 희망이 큰 만큼 번민도 많았던 시절, 밤이 새도록 이야기해도 지루하지 않은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뒷동산 오솔길을, 긴 골 고구마 밭을, 벼이삭 고개 숙인 들녘을 함께 걸었다. 시원한 미싯가루 물과 막걸리를 들고, 고구마를 나누어 머리에 이고, 밭에 가서 풀도 뽑으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장티프스에 좋다고 반찬둠벙에서 미꾸리며 뱀장어, 메기를 잡아오셨고, 어머니는 정성으로 끓여 주셨다. 방학이 되면 환자를 단양 오사리까지 혼자 보낼 수가 없어 기차, 버스를 갈아타고 가 그 곳에서 여름과 겨울을 지내곤 하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여 멀리 떨어져 살게 되자, 우린 자주 볼 수가 없었다. 편찮으신 시부모님, 육아, 직장일로 바쁜 그녀와 세 아이 기르며 직장생활을 해야 했던 나는 1년에 두 세번, 방학에나 겨우 만나 회포를 풀었다.

지난 겨울, 바쁜 생활 중에도 틈틈이 써 온 글을 모아 그녀는 작품전을 열었다. 딸과 암사동갤러리를 찾아가니 전시장 한가운데 너무도 가슴 따스한 글 귀가 보였다. '옆에 앉아' 메일로 보낸 내 글이 작품설명서에 담겨 더 반가웠다.

'조약돌 빛나던 오사리 강가에서올갱이 잡으며 물장난치던사랑스런 눈웃음에 목소리 선한 그대야~

어디쯤 와 있는가그대 지금 무얼 하는가늦가을 숲 사잇길을 손 잡고 걷고 싶네.'

우린 지금 늦가을 숲이 아닌 겨울 갈대숲을 걷고 있다. 착한 남편들이 저만치서 방해된다며 떨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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