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언어는 향기다
꽃의 언어는 향기다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7.04.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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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봄이 세상을 움직인다. 봄을 맞느라 산중과 도시는 수선스럽다. 벚꽃과 매화가 봄을 알리면 사람들은 벌떼처럼 그곳으로 달려간다. 봄꽃을 보고자 도로 위에서 시간을 축내도 기꺼이 감수한다. 나도 그 대열에 끼었다. 주말 오후 미동산 수목원을 찾았다. 오늘은 이곳에서 미선나무 분화전시회가 있다. 미선나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또한 천연기념물로 정해진 1속 1종의 희귀종으로 충북을 대표하는 나무로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열매의 모양이 둥근 부채를 닮았다 해서 미선(尾扇)이란 이름을 붙였단다. 꽃 이름이 정겹고 어여쁘다. 자생지는 충북 괴산 지역인데 해마다 그곳에서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미선나무 꽃무리가 나의 시선을 끈다. 유연하게 휘어진 가지마다 다복다복 하얀 꽃송이를 달았다.

꽃잎이 백옥같이 맑아서 순박한 산골 소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지난겨울, 칼바람을 이겨낸 미선나무의 하얀 손짓이 대견하다. 고것들이 한창 물이 올라 살아있음을 향기로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침묵 속에서 꽃을 피워낸 미선나무는 `향기로 날 기억해줘.'라고 말하는 듯하다.

전시된 80여 점의 미선나무 앞에 서니 꽃구름을 품은 듯 말없이도 생명감이 느껴진다. 저마다 완숙한 미(美)와 향기를 지니고 있다. 투박한 항아리에 살포시 들어앉은 꽃송이들에선 애잔한 향기가, 청아한 도자기에 품은 꽃은 고혹적인 향기가 배어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니 코끝을 파고드는 향내가 그윽하다.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향기가 있다. 그것은 손으로 잡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것, 이 봄에 살아있는 생명체와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꽃과의 교감이다. 순간 꽃과 내가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정원을 돌아 나오다 길섶에 웅크리고 있는 봄까치꽃을 보았다. 실눈을 뜨고 배시시 웃고 있는 청보라빛 꽃송이에 꿀벌들이 노닐고 있다. 굳은 땅을 밀고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머리를 쓰다듬다 무릎 꿇고 코를 묻었다. 몽글몽글 애기냄새가 난다. 이렇듯 자연은 지척에서 그저 침묵하며 피고 지는 일을 해낼 뿐이다. 꽃잎이 크든 작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꽃 한 송이에서도 저마다 향기를 지닌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꽃의 향기가 짙어야 가슴속에 오래오래 피어 있듯 사람도 삶의 무늬가 아롱아롱 새겨져 있어야 사람냄새가 묻어난다. 외형적인 모습은 그리 중요하진 않다. 향수로 치장한 듯 인위적으로 풍기는 사람의 향기는 거리감이 들고 오래가지 않는다. 좋은 사람 곁에는 벌처럼 자연스레 사람이 꼬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미선나무 향기를 품을 수는 없다. 젊어서는 꽃향기보단 크고 화려한 꽃이 좋았다. 그런 인생을 꿈꾸었다. 그러나 꽃잎 지는 이즈음에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길섶에 핀 야생화 같은 삶에 마음이 끌린다. 척박한 곳에 핀 까치꽃에도 미미한 향기가 있어 꿀벌들이 오글거리지 않던가. 꽃향기가 아무리 진하다 한들 사람들 가슴속에 핀 사랑만 하랴. 화려하지 않아도 수수한 풀꽃 향기만 되어도 좋겠다. 아직도 누군가 나를 풀꽃 같은 존재로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미선나무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봄날, 난향천리(香千里) 인덕만리(人德萬里)란 말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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