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사봉공(滅死奉公)의 진실
멸사봉공(滅死奉公)의 진실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7.04.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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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광주 국립 5·18 묘지를 찾아 방명록에 `滅死奉公(멸사봉공)'이라고 썼다가 `滅私奉公(멸사봉공)`으로 바로잡았다고 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을 버리고 공공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통 바친다는 의미의 滅私奉公(멸사봉공)의 사사로울 私(사)를 죽을 死(사)로 썼다가, 김명연 수석대변인의 오기라는 지적에 따라 뒤늦게 고쳐 썼다는 전언이다.

한자를 모를 수도 있고, 알고 있던 한자를 실수로 잘 못 쓸 수도 있다. 방명록에 틀린 한자를 썼다가 수정하는 것이 문제 삼거나 흉볼 일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급한 성정의 소유자라면 국가의 중요 정책들 또한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방명록의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분들이 죽음으로서 항거를 했기 때문에 죽을 사자를 썼는데, 다시 쓰라고 해서 사사로울 사자를 썼다”며 “기자 여러분이 그 뜻을 판단해 달라”는 것이 홍 후보의 대답이다.

그런데 죽을 死(사)로 쓴 것이 자신의 소신이었다면 굳이 타인의 지적 때문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 받았다면 소신도 그 즉시 바꾸는 것 또한 당연하다. 문제는 누군가의 세치 혀에 흔들려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이다.

광주 민주 항쟁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기존의 긍정적 의미를 滅(멸)함으로써 좌파 빨갱이들의 내란으로 규정하겠다는 것이 홍 후보가 `滅死奉公(멸사봉공)이라고 쓴 의도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5.18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기존의 긍정적 평가를 滅(멸)해야 한다는 편협되고 부정적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새 대통령 감이 못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죽을 死(사)를 썼다고 한다면, 잘 모르는 한문을 오남용한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죽을 死(사)가 광주 민주 항쟁 희생자들의 죽음이 아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반민주 독재 세력을 상징한다는 전제하에, 모든 적폐 세력을 멸함으로써 봉공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사사로울 私(사)를 죽을 死(사)로 대체해 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훌륭한 의도였다면 홍 후보에게 얼마든지 한 표를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대통합의 새 시대를 이끌 새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바로 적폐 청산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을 사(死)란 글자를 쓴 것이 자신의 소신이었다면, 타인의 눈치 볼 필요 없이, 그 어떤 지적에도 흔들림 없이 초지일관 했어야 마땅하다.

작심삼일은 고사하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은 소신도, 신념도 그 무엇도 아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이 소신이고 신념이기 때문이다. 표심을 의식한 얄팍한 전술이라고 해도 하책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 즉,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지만, 그 말한 바를 실행함에 있어서는 민첩하다는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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