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의인(義人)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며
세월호 의인(義人)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며
  • 조병옥<충북도 행정국장>
  • 승인 2017.04.12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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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조병옥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주기가 된다.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3년 만에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바라보는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세월호 참사는 선사 측의 무리한 선체 개조와 과적, 선장과 선원들의 무능과 무책임, 조타수의 미숙, 소극적인 구조와 뒷북 대처 등 총체적인 부실이 만든 최악의 후진국형 사고였다.

온 국민이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바라보는 눈앞에서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은 국민에게 굉장한 충격을 안겨줬다. 희생자 가족은 하루아침에 멀쩡한 가족을 잃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은 사고 이후 현장을 떠나지 못한 채 애를 태우며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 중 충북에 연고가 있는 희생자는 11명으로 단원고 교사 3명과 단원고 학생 8명이다. 이중 단원고 교사 3명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생존한 학생들의 증언과 재판과정을 통해 알려지면서 심금을 울리고 있다. 아버지가 단양 출신인 2학년 2반 담임 전수영(당시 25세) 교사는 참사 당시 SNS를 통해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어라', `침착하고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 학생들을 격려했다. 전 교사는 어머니와의 통화 때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고, 남자친구에게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어 미안하다”는 연락도 남겼다.

전 교사는 원래 탈출과 구조가 쉬운 5층 숙소에 있었지만 결국 학생들의 숙소가 있는 3층 주방과 식당 사이의 출입문 쪽에서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발견됐다.

보은 출신인 2학년 8반 담임 김응현(당시 44세) 교사는 학생들을 갑판 출입구까지 인솔해 대피시키고 자신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가 “큰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침착하게 이끌었다. 김 교사는 4층 앞쪽 왼쪽 객실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채 학생들과 함께 발견됐다.

청주 출신인 남윤철(당시 35세) 교사는 당시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었으나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도 탈출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일일이 챙겨주고 서둘러 갑판으로 올려 보냈다. 남 교사는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걱정 말고 침착하라, 그래야 산다”며 독려했지만 결국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선체 뒤쪽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승객들을 안전하게 구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선장과 선원들은 나 혼자 살겠다고 일찌감치 도망칠 때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은 돌보지 않고 희생한 교사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며 의인이다.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져 물이 차오르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무릅쓴 교사들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로 분노하고 절망하고 슬퍼하면서도 이러한 의인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우리 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세월호 영웅들의 살신성인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세월호 참사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남은 우리의 책무이며 사명이다. 그것이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세월호 의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희생자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보내면서 희생자 304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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