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풍경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봄의 풍경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4.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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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도도한 봄에도 외로운 나는 흐드러진 벚꽃 길을 혼자 걸었다.

서울로 떠나 있는 두 딸과 고된 일상에 시달려 낮과 밤을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은 아내에게 벚꽃과 봄 햇살은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춘흥을 어쩌지 못하고 꽃길을 걸었고, 하마 흩날리는 꽃잎의 난무(舞)를 만나면서 쓸쓸함의 깊이만 키우고 말았다.

꽃길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자동차 또한 가득해서 번잡한 도시의 풍경이 꽃 대궐을 압도하는 듯했고 차라리 꽃구경이 덤이었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사람들의 모습은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와, 흐뭇한 표정으로 유모차를 미는 젊은 부부. 그리고 무거운 몸을 이끌면서도 남편의 팔을 의지한 채 행복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는 임산부의 모습은 꽃들이 사람에게, 사람은 다시 꽃들에 서로 나누고 더하는 희망의 풍경이었다. 자식 손주들을 거느리고 나온 어르신들의 느긋하고 뿌듯한 표정도 어김없으니, 봄은 말 그대로 싱그러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지난 늦가을부터 겨울을 훌쩍 넘기기까지 얼마나 혹독하고 많은 시련과 가슴 떨림을 견뎌왔던가.

그 혼돈의 계절을 보내고 마침내 우리 사회의 거대한 모순을 드러내 끊어버리고 맞이하는 봄, 꽃길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자긍심으로 사람도, 꽃도 더 찬란하다.

그 겨울 촛불의 광장에는 넘쳐나는 자유와 그 어느 나라 백성도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평화가 끝내 지켜져 왔다. 그리고 그 촛불 광장에는 재기 발랄한 풍자와 해학, 더불어 다양한 상징을 통해 획일화되지 않고 상상력과 창의가 풍성한 백성임을 만방에 과시하는 쾌거도 만들어 냈다.

올봄은 노랗거나 꽃 분홍이거나, 또 하얗게 비행하는 꽃들은 물론이거니와 모처럼 닫힌 속 풀어낸 사람들의 모습조차도 참 아름답다.

거기에는 주말이면 내내 촛불을 들었던 사람은 물론 차마 용기를 내어 광장에 나가지 못했던 사람도, 그리고 촛불이 못내 거슬렀던 외롭던 사람들 또한 갈등이나 주저함 없이 꽃들과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아직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세상, 그 꽃잎 난분분한 봄의 터널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이제 겨우 국정농단과 뇌물의 의혹, 그리고 블랙리스트로 통칭하는 지독한 편 가르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탄핵과 구속의 형식으로 격리 혹은 분리시켰을 뿐이다.

꽃이 한꺼번에 피고 지었다를 거듭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도 일제히 장미대선으로 전이되고 있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당의정이 있어 촛불의 기억을 자꾸만 뒤덮으려 하고 있으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과 잊지 않겠다는 세월호의 맹세 또한 흐릿하게 하는 눈속임도 있다.

세상은 결코 겸손하거나 진지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촛불로 인해 빨라진 대선의 의미와, 촛불로 인해 드러난 시대의 모순과 해악의 실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또한 부담이 있다.

그러나 꽃은 화려한 이미지와 비주얼, 그리고 쇼맨십에 넋을 놓게 되는 사람들을 위해 피어나는 건 아니다. 꽃이 있어야 열매가 있고, 그 열매로 인해 세상은 지속가능할 것이니. 떨어지는 꽃잎 그저 감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닌 것이 올봄 풍경의 깊은 속 뜻 아니겠는가.

지난밤 그리도 서럽게 봄비 내리며 서둘러 꽃잎 떨어진 것은 (사람에 대해서는 특히)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는 자연의 깨우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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