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깊은 집
마당 깊은 집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4.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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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잔가지 끝에 별이 떨어진다. 가지 끝에 매달린 빗방울은 봄을 재촉하기보다는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잡는 듯 가끔 흔들어대는 나목엔 그리움마저 떨어진다.

바람이 머물던 자리엔 봄기운이 움트고 골짜기마다 동백꽃 잎이 떨어지는 어느 날, 대나무 사이로 바람과 햇살 그리고 아련함이 머무는 담양에 머문 적이 있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저 밋밋하고 꾸밈도 없는 언제나 소박함이 한결같은 대나무, 위로 자라기 전에 땅속으로 깊게 먼저 뿌리를 내려 자란다.

이렇게 내실을 다지는 것처럼 체면치레 겉치레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처럼 대나무는 대인군자(大人君子)의 상징이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추억을 잡고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그런가 보다. 바람에 우는 대나무소릴 들으며 탄성을 질렀고 죽녹원에서 죽림욕을 하면서 저절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되뇌며 단박에 동심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경문왕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에 갑자기 그의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나 오직 한 사람 왕의 복두장이만 알고 있었다. 평생 그 사실을 감히 발설하지 못하다가 그는 죽을 때에 이르러 도림사(道林寺)라는 절의 대밭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향하여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부터 바람이 불면 대밭으로부터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소리가 났다. 경문왕은 대를 모두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하였지만 그 소리는 여전하였다고 하니 진실은 살아있는 게 분명했다.

어스름 저녁 수은등이 발밑으로 떨어질 무렵에야 발걸음마다 추억을 새겨놓고, 대숲을 벗어나 야트막한 돌담장에 빗장을 열고 닫는 자그마한 대문이 있는 민박을 찾았다. 시간이 멈추어진 이곳, 돌담길이 보존된 고택, 관광명소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담양의 슬로시티였다.

한옥의 뭔가 특별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절로 황홀해 졌다. 누구나 우리의 정서에 맞는 한옥을 선망하지만 밀려오는 서양풍습에 젖어들다 보니 우리의 한옥이 외려 특별한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느껴지고 또한 생활이 어설프고 불편한 건 사실이다.

아직도 부엌에 부뚜막과 대청마루와 뜨락에 댓돌이 그대로 있는 한옥, 바라보는 우린 절로 감탄사가 쏟아진다. 돌쩌귀가 닳아 둔탁하게 삐걱거리는 부엌문을 여닫는 아낙, 아직도 국화동자정의 문고리에 오래된 숟가락으로 문을 걸고 있는 모습은 시간과 공간의 묘한 기류로 가슴 언저리가 따스해진다. 그럼에도 IT 강대국으로 산업화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편리하고 손쉬운 서양문화의 입식과 좌식이 몸에 배 있었다. 상업지역에 발을 들여놓으면 대부분 입구부터 뜻도 이해하기 힘든 외국말의 간판이 즐비하게 달린 게 현실 아니던가.

어느 광고에서 말하듯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전통가옥을 확 밀어버리고 너도나도 입식문화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그때 우린 우리의 문화까지 확 밀어버렸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편해지기는 했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 무엇인가 잊고 지냈던 기억 상자를 열어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거 우리의 혼, 역사 그리고 우리 문화를 외면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우리 고유의 문화 역사를 계승하면서, 우린 신토불이를 외치며 한국적 전통문화를 되짚어 보며 뒤늦게 느림의 미학인 우리 문화에 매료되어 찾는 거다.

바람도 잠이 든 마당 깊은 집, 바스락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새벽녘에야 겨우 무겁게 내려앉는 눈을 비비며 잠이 들었다. 간간이 적막을 깨는 돌쩌귀소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아른아른 속삭이듯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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