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사물함 속의 2억원
대학교 사물함 속의 2억원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04.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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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2016년 5월 어느날, 변호사 부인과 교수 남편과의 대화.

아내 :“여보, 이거 내가 불법으로 번 돈인데 어디다가 좀 숨겨줘. 남들 안 보는 곳에다 잘 숨겨놓아, 내가 재판받다가 구속되더라도 교도소에서 나오면 우리가 써야 하니까.”

남편 :“알았어요, 잘 다녀와요. 내가 이 돈 꼭꼭 잘 숨겨놓을게. 날마다 잘 있나 확인도 해볼 테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감옥 생활, 잘 마치고 오세요. 내가 면회도 자주 갈게.”

이 부부의 대화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더구나 2명의 화자(話者)가 우리 사회 최고 지성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부장 판사 출신의 부인과 서울 명문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이라면.

정운호 게이트 등과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최유정 변호사의 남편 A씨가 아내 때문에 졸지에 범법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지난 4일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가 숨긴 범죄 수익금 2억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건은 11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아내인 최 변호사가 정운호 전 내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이숨투자자문회사 대표 송모씨 등에게 재판부 청탁 명목으로 각각 50억원 씩 총 100억원대의 부당 수임료를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였다.

구속될 것을 예감한 그는 검찰에 의해 자신의 범죄 수익금이 모두 압수될 것에 대비, A씨에게 자신이 은행 대여금고에 숨겨놓았던 15억여원의 현금과 달러를 찾아 다른 `안전한' 곳에 보관하라고 부탁했다. 이후 A씨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이행했다. 자신의 거래 은행에 새로 대여금고를 개설해 아내의 금고에 있던 돈을 이체(?)했다. 그러나 바보 같은 짓이었다. 100억원대 수임료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인데 검찰이 `경제공동체'인 남편의 대여금고를 그냥 놔둘 리는 없었다.

검찰은 곧바로 최 변호사와 남편의 은행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 은행 금고에 숨겼던 현금 8억여 원 등 13여억원을 압수했다.

그런데 이때 압수당하지 않은 돈이 있었다. 금고의 부피가 작아 미처 입금을 하지 못했던 2억원의 현금이 남편인 A교수의 품에 살아남아 있었던 것. 이때부터 남편은 2억원을 애물단지처럼 들고 다니는 신세가 돼버렸다. 집에 보관하자니 언제 검찰이 또다시 덮칠지도 모르고, 친구나 친지들에게 맡기자니 이상한 눈으로 볼 터이고. 아니 빼앗길 수도 있었다. 어차피 분실해도 신고도 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다 생각해 낸 곳이 자신의 직장인 대학교 캠퍼스 내 학생용 사물함이었다. 지난해 5월부터 지난 2월까지 장장 9개월 동안 돈 보따리를 들고 고민하던 그는 지난 2월 16일 자신의 연구실이 있는 학교 강의동 1층 학생 사물함에 2억원 돈 봉투를 직접 넣었다.

그러나 이 돈은 곧 발각됐다. 신학기를 맞아 사물함을 일제 정리하던 학생회가 돈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주변 CCTV를 확보해 A교수를 용의자로 특정했고 결국 그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범법자가 돼 기소 위기에 처한 교수님. 제자들 앞에서 망신살이야 인두겁으로 버틴다 쳐도 직장에서 쫓겨나지나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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