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퍼런 봄
서슬 퍼런 봄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4.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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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몸통은 남정네의 팔로 안아도 아름이 넘을 것 같고 기상은 하늘을 찌른다. 사방으로 팔을 벌려 잎사귀를 품고 있는 모습이 가솔을 품어 안은 가장의 모습이다. 성군이 민심을 품어 안은 모습이다.

모르기는 해도 예전에 지나간 태풍 매미와 사라를 만났을 것이며 폭설, 장마는 물론 지나던 나무꾼의 낫 놀림 한 번쯤은 당했을 법한데…. 하늘과 숲과 바람과 그 아래 사람까지 아우른 조화가 평화의 깃발처럼 나부낀다.

도심 곳곳에는 나무들이 상처를 안고 모여 산다.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한계를 모르는 어린나무도 한 평 남짓 땅에서 단칸 셋방살이처럼 서럽다.

겨울이면 전라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창상에 얼룩진 몸뚱어리는 안쓰럽고 참담하기까지 하다. 무책임하게 방사하는 이기적 부산물과 문명의 찌꺼기 앞에서 코를 막고 컥컥 거리는 신음도 함께 들린다. 몇 개의 옹이야 연륜으로 보이지만 연연히 당한 흔적으로 생긴 옹이는 나병환자의 뭉툭해진 손가락처럼 서늘하다. 음습한 배경과 참담하게 일그러진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뭉크의 절규처럼 도시의 숲이 비명을 지른다.

신기하게도 봄이 오더니 뭉툭한 팔과 어깨너머로 희망이 퍼덕이고 있다. 겨우내 안으로 몸부림치던 생의 의지가 봄을 구실로 터져 나왔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다. 분연히 일어섰던 가슴 뜨거운 청년들의 푸른 열정이다. 동학군의 깃발처럼 나부낀다. 그들의 분노는 발광發光하는 오로라였다.

청주 초입에 들어서면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지키고 섰다. 사계四季의 풍경이 장관인데 간섭과 수난을 무릅쓰고 눈물겹게 이루어낸 자유라서 더 아름답다. 그들의 겨울을 눈여겨본 적이 있다. 절망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은사시 같은 순백과 정결의 극치를 보았다. 희망을 예고하는 대서사시 같아서 황홀했다.

고향 마을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무질서의 숲을 기꺼이 용납한 채 어머니의 품처럼 참 따스했다.

숨통을 트느라 사방의 한 틈새를 비집고 바다가 들어앉았는데, 숲을 이탈한 시선의 탈출구는 하늘과 그 엉덩짝만 한 바다뿐이었다. 그때는 숲이 주는 고 순도의 산소와 그와 맞먹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었다.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며 기껏 머리를 쓴다는 것이 틈새에 작은 숲을 옮겨다 놓았다. 맹목적인 질서를 만들고 절제의 미를 요구한다. 이 부조리를 흔드는 것이 봄이다. 봄은 기꺼이 상처를 품어 싹을 틔우고 서슬이 퍼렇도록 자유를 외친다.

숲의 무질서는 방종이 아닌 자유다. 범할 수 없는 숲의 질서이다. 자유의지로 존재하는 숲은 생명이다. 나는 숲에서 사람을 보았고 사람에게서 숲을 보았다.

매일 밤 꿈을 꾼다. 도심의 숲도, 나도, 당신도…. 그 꿈은 아마도 탈속이 아니라 인내에 대한 소망일 것이다. 광활한 숲과 무질서의 자유를 향한 동경보다 문드러진 상처에 새살이 돋고 꽃을 피울 때까지 지금 이곳에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연하는 자유가 초록횃불로 타오르고 있다. 함께이되 고독한 우주의 미아들이 온통 궐기한 서슬 퍼런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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