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유감
벚꽃 유감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4.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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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은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바꾸어 간다.

매화부터 시작하여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 각양각색의 야생화들이 자고 나면 봄 무대의 주인공으로 번갈아 등장하여, 관람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곤 한다. 이렇듯 세상 모습을 바꾸어 놓는 봄꽃들 중에서도 가장 단시간에 압도적 포스로 세상을 바꿔 놓는 것으로는 단연 벚꽃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하루 저녁에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벚꽃에 대해 고래의 시인 묵객들은 온갖 표현들을 만들어냈는데, 근대의 승려 시인 한용운(韓龍雲)도 그 중의 하나이다.

벚꽃 유감(見櫻花有感)

昨冬雪如花(작동설여화) 지난겨울은 눈이 꽃과 같더니
今春花如雪(금춘화여설) 올봄은 꽃이 눈과 같구나
雪花共非眞(설화공비진) 눈도 꽃도 모두 진짜가 아니거늘
如何心欲裂(여하심욕렬) 내 마음 찢어지려 함을 어찌할거나

 

겨울의 산야에는 꽃이 없다. 그리고 일부 상록수를 제외하고는 나뭇잎마저 떨어지고 없어서 삭막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삭막한 겨울 산야를 일시에 다름 모습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눈이 그것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삭막한 빈 가지에 불과했던, 산야의 나뭇가지들 위에는 하룻밤 새하얀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 앉았다. 그러나 겨울 나무에 앉은 눈은 비록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긴 해도 꽃은 아니다. 다만 꽃처럼 느껴질 뿐이다.

겨울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세상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눈과 흡사한 것을 봄에 찾는다면, 단연 벚꽃이다. 벚꽃은 눈이 아니지만, 늘어선 벚나무에 자고 나니, 하얗게 만개한 모습은 눈이 내려앉은 모습을 방불한다.

사람들의 심사는 참으로 묘하다. 겨울에는 눈을 보고, 벚꽃을 연상하고, 거꾸로 봄에는, 벚꽃을 보고, 눈을 연상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눈은 눈일 뿐이고, 꽃은 꽃일 뿐이다. 더 나아가, 승려였던 시인의 눈에는 꽃이고 눈이고 모두 참(眞)이 아니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껍데기일 뿐이다.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설법하는 승려이기에, 시적 안목도 남다른 데가 있다. 눈이 내려도, 꽃이 피어도 혼탁과 무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에 시인은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계절에 맞추어 자연이 보여주는 장관(壯觀)은 인간에게는 경이(驚異)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반가운 존재만은 아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과 봄에 피는 벚꽃은 경이 중에서도 경이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사(心思)이다. 어지러운 인간사(人間事)에 자연이 던져주는 경이는 때론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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