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의 경고
베르베르의 경고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4.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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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애꿎은 의사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국가의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고 과잉 치료와 처방으로 노인들의 수명을 과도하게 늘리고 있다는 이유였다.

사회보장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그를 메꾸기 위한 세금은 기하급수로 늘어나자 사회는 70세 이상 노인들을 공적으로 몰았다. 저출산으로 생산인력은 줄고 수명연장으로 노인인구가 급증하며 복지와 연금 등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고통이 극심해진 탓이다.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는 `세금먹는 하마'를 정리해야 한다는 반노() 캠페인이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

여론을 살피던 대통령이 긴급 시국담화에 나선다.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더 이상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늘려갈 수 없습니다.”

정부는 곧바로 단호한 조치를 쏟아낸다. 인공심장 생산과 피부·신장·간 대용물 개발 프로그램이 즉각 중단됐다. 노인 의료비 지원도 대폭 삭감됐다.

80세부터 치과, 85세부터는 위장 치료 지원을 끊고 90세부터 진통제 처방이 중단됐다. 100세부터는 모든 무상치료가 금지됐다. `휴식·평화·안락센터'가 설치됐다. 자식이 동의하면 노인들은 이 기관에 강제 수용된다. 정부는 복지시설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안락사를 전담하는 시설이다.

주인공인 노부부도 철석같이 믿었던 자식에게 배신당해 이 시설로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호송버스를 탈출한 부부는 같은 처지의 노인들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은 노인의 미래를 이렇게 우울하게 전망했다.

지난 2015년 `타임'지는 그 해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142살까지 살 수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 의학자들은 2050년이면 수명 120세가 보편화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지금 한창 연구·개발 중인 노화억제제가 시판되면 타임지의 전망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의학자들도 적지않다. 선진국은 이미 수명 120세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미래를 재설계하고 있다. 이같은 대책이 늦어지거나 실패하면 베르베르가 소설 속에서 경고한 대로 의사들이 지탄받고 노인들이 배척받는 끔찍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르베르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이지만 지구상에서 이 문제를 가장 절박한 숙제로 받아들여야 할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우선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현재 노인인구 비율은 13%에 불과하지만 2050년이면 35.9%까지 치솟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늙은 나라가 될 전망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률이 고령화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고령화 초입에 들어선 지금도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악이니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인구 1명이 은퇴한 노령인구 2명을 부양하는, 그래서 청년과 노년 모두가 고통을 겪는 가혹한 시대가 목전에 닥쳐있다.

저출산과 일자리, 가계부채 못지않게 절박한 것이 노인문제이지만 이를 고민하고 해법에 골몰하는 대선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60세 이상 유권자는 전체의 23.4%로 30대(18.1%)와 20대(17.7)를 크게 웃돈다. 결과를 좌지우지할 세를 구축했지만 후보들로부터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정책은 보지않고 이념적 잣대에만 집착해 주권을 행사해온 탓은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누가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는 선동에만 박자를 맞추며 선거철을 허송하다가는 멀지않은 장래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노인문제에 넋을 놓고 있다간 큰 재앙을 맞는다”고 정부를 질책했다.

그는 `노인청'같은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노인정책을 총괄토록 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정확한 지적이요 항변이지만, 리더의 외침만으로는 굼뜬 정치와 정부를 움직일 수 없다. 노년층은 물론 노인세대 입문을 앞둔 중장년층은 이번 대선부터라도 거듭나야 한다. 자신에게 절실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정책과 복지를 약속한 후보를 골라 표를 몰아주는 영악한 유권자로 말이다. 사실 베르베르의 소설은 세대를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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