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아무거나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4.0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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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어두운 방에 빛이 깃드는 새벽처럼 식탁이 훤해진다. 오징어와 파가 조화를 부려도 진수성찬이거늘 그 위에 달걀 옷까지 입혀 나오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콩나물밥 값이 7000~8000원 정도 예상하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단돈 4000원이라는 말에 뿌듯했던 충주의 어느 식당에서처럼 작은 행복감이 와 닿는다. 생각지도 않은 성찬을 받은 기분이다.

어느 식당에 가지? 때 이른데 그냥 집에 가서 먹을까? 식당을 정하면서도 변죽이 들끓듯 했는데 메뉴판 앞에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각자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어 기다리고 기다린다. 나 또한 별다르지 않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훑어보는 것도 모자라 색다른 음식은 없을까 하여 주변 식탁으로 고개를 돌린다. 둘이 먹거나 여럿이 있거나 공통분모를 찾는 게 만만치 않다.

해물 파전과 두부김치를 주문하고도 청국장을 먹고 싶어 한다. 먹을 양을 고려하면 어느 카드 한 장은 버려야 한다. 세 가지 음식을 다 먹기엔 벅차다. 종업원을 다시 부른다. 오죽하면 어느 지역 식당에서는 `아무거나'라는 메뉴를 개발해 팔고 있을까. 느려지는 주문이 미안해 단발머리를 한 종업원의 얼굴에 미소를 보낸다.

음식만 그런 게 아니다. 여행지 선택도 별다르지 않다.

오늘처럼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 자유롭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매번 가벼운 생각으로 길을 나설 수 없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목적지를 미리 봐 둬야 한다. 그 길이 멀든 가깝든, 떠남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춰 놓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는다면 “그럼 그렇지. 꼭 말을 해야 해.”라는 핀잔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젊든 나이들든 남자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 가정에서 역할 분담이 늘어나는데도 대우는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여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맞서지 못하고 쩔쩔맨다. 집안일은 물론 바깥일마저 반기를 들었다가는 큰일이 난다. 정말이지 가장은 키에 담긴 곡식처럼 가족 구성원의 말발에 의해 춤추게 마련이다. 농부의 손길 따라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다 버려지는 쭉정이 처지가 될 수도 있다. 햇볕과 물기를 잉태하며 몸 불린 시간의 대가를 구할 여지가 없다. 알곡으로 남으려면 안간힘을 쓰며 버텨야 한다.

어떠한 문화가 도래하여 남자들은 설 곳을 빼앗기고 있는가? 현실의 벽 앞에서 혼란을 겪을까? 남자도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갈망은 가슴 속에 넣어두는 경우가 더 많다. 휴일에 조용히 쉬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금기시된 주문이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러한 바람은 혼자가 되어서야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가슴에 담아두었던 뜨거움을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나이 들어갈수록 약해지는 게 남자라지만 나를 지켜봐 주는 가족이 옆에 있다. 옆에서 응원하는 가족이 있다.

오늘도 `아무거나'라도 하나 건져 보려고 아침을 맞는다.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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