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 거는 기대
프로야구에 거는 기대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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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프로야구시즌이 개막됐다. 이제 매일 밤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될 것 같다. 나는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에서 야구장을 찾아 직접관람하거나 중계방송을 보는 것을 첫 번째로 꼽을 만큼 야구를 좋아한다.

아마 어려서부터 동네아이들과 야구놀이를 하고 놀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너른 운동장이 아니라 비좁은 동네 골목에서 고무공을 던지고 치는 수준이었으니 야구 비슷한 놀이였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정식 야구글러브나 배트는 있을 리 만무하고 시멘트포대 같은 질긴 종이로 글러브를 만들고 나무 몽둥이를 배트삼아 야구놀이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가죽냄새가 풀풀 나는 야구 글러브를 사오셨다. 당시에 동네에는 그런 글러브를 가진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형과 나는 동네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해가 지도록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놀았었다. 그때 공을 던지고 받는 일을 충분히 익혔고 야구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것 같다.

중학교시절엔 야구선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이룰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야구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당시에는 고교야구 열기가 대단했다. 아마 지금의 프로야구 열기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린 것 같다. 우리 학교에도 야구부가 있었는데 전국대회에서 4강에 오르내릴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그래서 야구대회가 있는 날은 수업시간에도 라디오 중계를 들으며 응원했고, 4강이나 결승에 오를 때면 지금은 사라진 서울 동대문야구장으로 응원을 다녔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야구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은 수업을 빼먹고 서울에 올라가기도 했는데 거기에서 선생님들을 만나면 꿀밤 한 대로 무단결석의 벌칙이 면제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야구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인생살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내가 방송국에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보도나 제작부서와 기술부서간의 알력이 컸었다. 프로그램 제작을 하려면 기술부서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기자나 피디 초년병시절에는 기술국 선배들과의 마찰 때문에 속앓이를 하곤 했다. 그렇게 기술국 선배들과 몇 번을 싸우고 난후에 그 중에 가장 꼬장꼬장한 선배와 우연히 야구이야기를 했다가 서로 통했다. 그래서 직장야구팀을 만들기로 결의하고 그 업무를 내가 맡아서 추진했는데, 회사에 야구팀이 생긴 이후 거짓말처럼 기술국 선배들과의 마찰이 없어졌다. 야구장에 가면 부서간의 갈등이나 선후배의 갈등은 모두 사라지고 우린 한 팀이었다. 한 팀이라는 동료의식의 소중함을 야구를 통해 배운 것이다.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지만 야구도 이렇게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아우르는 매력이 있는 운동이다. 야구장에서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거의 한 가족과 같다. 안타 하나에 홈런 하나에 생판모르는 사람끼리 손을 마주치고 부둥켜안으며 기뻐한다. 이렇게 야구에 열광하는 것은 의식하지 않아도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야구의 승패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실력이다. 그러나 종이 한 장 차이로 벌어지는 실수와 행운으로 승패가 결정되고, 한순간의 방심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일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으로는 누구도 예상 못했던 반전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즌 개막초기에 하위 팀으로 꼽히던 팀이 선전하며 상위권을 내달리기도 하고, 누가보아도 우승후보 같았던 팀이 하위권을 맴도는 현상도 자주 일어난다. 한순간의 방심과 무지와 요행의 혼합물인 자만심에 빠졌을 때 그 결말이 어떤지를 냉혹하게 보여주며, 남모르게 흘린 눈물어린 땀의 결실이 무엇인지도 여실히 보여준다. 승리와 패배, 환희와 좌절, 기쁨과 아쉬움이 서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손바닥 뒤집기와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2017년, 격변의 한해를 살아가야할 국민들에게 프로야구가 작은 위안과 기쁨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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