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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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4.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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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김경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건축은 돌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했다. 그것은 건축에는 지나간 시대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경복궁 뜰을 거닐었다. 지인들과 북촌 여행길에 들른 경복궁은 여전히 그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옛 사람은 없지만 그 흔적은 여기저기서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차가운 돌담을 손끝으로 느끼며 걷노라니 자분자분 걷는 궁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호젓한 이 길에서 밤이면 떠올랐을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람은 이 궁 안에서 벌어졌던 모든 것을 지켜본 증인이다. 왁자한 연회가 있었을 때도, 왕실의 온갖 경사가 있었을 때도 피바람이 불던 역사의 순간에도, 바람은 말없이 보았을 터이다.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눈이 있어도, 귀가 있어도, 입이 있어도, 손이 있어도 발이 있어도 발설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궁궐을 지키는 돌짐승의 눈이 슬퍼 보이는 것이.

근정전 앞마당의 박석이 거북의 등짝처럼 바짝 엎드려 있다. 오래된 울퉁불퉁한 박석은 비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에도 임금님과 조정 대신들의 가죽신을 잘 받들어 모셨을 것이다. 근정전의 박석은 우리의 옛 석공들이 건축에 있어 멋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 실용적인 면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선조들의 지혜는 궁궐뿐 아니라 마을과 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집을 지을 때는 산을 등지게 했다.

그래야 여름에는 산의 바람이 마당으로 내려와 시원하고 겨울에는 산이 찬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마을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지만 이웃 간의 정을 나누며 그렇게 어울렁더울렁 살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은 대도시뿐만이 아니라 작은 도시들도 아파트가 장악하고 있다. 아파트는 단절된 공간이며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폐쇄된 공간이다. 그곳에는 `우리'와 `이웃'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종종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도되는 이웃 간의 불상사는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층간소음부터 주차문제에 이르기까지 아파트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선조는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추구했다. 담장은 있지만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이의 돌담을 쌓았고, 설령 높다란 담일지라도 중간 중간 구멍을 내어 안을 들여 다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인정이 살아 있는 마을이었다. 언제나 이웃과 힘든 일도 즐거운 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러한 관계를 만들어 준 것은 집이 한몫을 했다. 대가 집에서도 걸인이 문을 두드리면 문전 박대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곤 했다.

몇 년 전 어느 부유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주민의 질책과 욕설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 주민에게 경비원은 이웃이 아니었다. 경비원은 결코 그들의 폐쇄된 낙원 속에서의 삶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단지 그들의 궁전을 지켜주는, 비인간적 취급을 받아야 했다. 경비원은 끝내 자살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하고 만다. 어쩌면 그러한 모든 비극은 `아파트'라는 폐쇄 된 공간이 만들어 낸 일일 것이다. 편리함과 속도만을 강조하다 결국 괴물을 양산하고 있다. 느리지만 정이 살아 있는 옛 우리 선조들이 살던 그 집이 사무치게 그립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면 동무들이 있고, 마당 한가운데는 평상이 있어 여름밤이면 그곳에 누워 옥수수를 먹으며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던 옛 선인들의 모습이 부러운 것은 괜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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