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7.04.0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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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달걀이 생겼다. 재미로 토종닭 몇 마리 키우는 큰형님이 유정란이라며 건네주셨다.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포장된 꾸러미를 풀며 코끝이 시큰했다.

닭들의 까만 눈동자를 피해 따뜻한 알들을 훔쳐내며 미안하다를 연발하셨을 형님의 둥근 뒤태가 떠올라 잠시 웃음기가 돌기도 했다. 냉장고에 정리하려니 엊그제 친구가 건네준 오골계 알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위해 근교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는데 오골계를 키운다. 조류독감으로 달걀이 귀하다니 벗들을 챙긴다고 챙겨왔다. 귀한 마음이 담긴 귀한 달걀들을 정리하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나 풀던 꾸러미를 다시 챙겼다.

엄마의 작은 뜰엔 어느새 동백이 지고 있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달걀만 건네고 오려는데 늘 그랬듯 엄마가 보따리를 내놓으셨다.

집에 늦게 들어가니 나중에 들르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차 트렁크에 밀어 넣었다. 파김치 담갔다고 한 통. 멸치젓 한 통. 마늘 잎 무침 한 통. 전봇대처럼 담 옆에 서서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는 엄마를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데 트렁크에서 반찬통들 돌돌돌 부딪는 소리가 마음을 아리게 했다.

자식들 키우느라 당신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엄마는 여전히 부모의 삶을 살고 계신다.

가까이 살면서도 늘 바쁘다고 가뭄에 콩 나듯 들르기 일쑤인데다 그나마도 엉덩이 붙이고 오래 앉아 있어본 적이 있었나. 큰 병 없이 자존심 푸르게 살아계심에 감사할 뿐이다. 공연히 차창으로 쏟아져 드는 봄볕에 눈물이 날 듯했다.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급경사진 언덕을 오르느라 엑셀을 밟는데 커다란 박스 리어카가 불쑥 끼어들었다. 급브레이크를 밟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조그만 개미가 나비를 이고 가듯 사람은 보이지 않고 높다랗게 쌓아올린 박스들이 좌우로 흔들리며 느릿느릿 지나갔다.

키 작은 노인 가슴에 위태롭게 걸린 리어카 손잡이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한 눈 파는 사이 경적을 울리며 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추월해 갔다.

얼떨결에 나도 자동차들의 흐름에 끼어들면서도 나도 모르게 저만큼 뒤처져 따라오는 노인을 백미러로 흘끔거렸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자를 하류노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 평균 소득으로 무난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노년에 하류로 전락한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우리라고 다를 바가 있겠는가. 돈도 안 되는 폐지에 생활을 의지해야 하는 고통스런 노년을 보내는 그 노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주위 어른들이 고령기에 접어들면서 마음 쓰는 일이 많아졌다.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노인들의 고독사나 며느리 눈치 보느라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공원에 모여 하루를 소일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노후 대책을 개인의 준비와 판단에만 맡길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사회적으로 약자가 존재하는 건 개인적인 문제뿐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고령화 사회를 위해 대선 후보들은 어떤 공약을 내놓을까. 이번 선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곧 팝콘 터지듯 벚꽃 피려니 하루 엄마를 모시고 꽃놀이나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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