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가드로수의 비밀
아보가드로수의 비밀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3.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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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과학자들은 세계를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로 구분한다. 미시세계는 원자적 수준 이하의 세계를 말하고 거시세계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세계를 말한다. 세상을 이렇게 구분하는 까닭은 그 두 세계가 단지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 질적으로 매우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원자가 아닌 사람도 그렇다. 군중은 개개 인간이 모인 집단이지만 개개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특성이 생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된 군중도 적개심으로 가득 찰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자도 많이 모이면 독립된 원자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미시세계인 원자가 얼마나 많이 모이면 거시세계가 되는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구분하는 숫자가 바로 아보가드로수다. 아보가드로수는 물질 1몰(mole)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다. 1몰은 대략 화학실험실에서 사람이 취급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을 말한다. 아보가드로수는 약 6×10²³개다. 600,000,000,000,000,000,000,000개! 억을 넘어 조를 넘어 경을 넘어 6000해(垓)라고 불러야 할까?

아무튼 엄청나게 큰 수다. 이만한 수의 원자가 모여야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거시세계가 된다. 물 한 방울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가 대략 이와 같다. 우리가 숨을 한 번 들여 마셨다가 내 놓는 공기 분자의 수가 대략 이 정도이다. 침을 탁 뱉었다 하면 대략 이 정도의 분자들이 날아간다.

아보가드로수가 이렇게 크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오늘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서 한 아이가 눈 오줌에 있던 물 분자가, 한 달 뒤 내가 마시는 한 컵의 물속에 들어 있다.' 그 아이의 오줌에 있는 물 분자의 수는 대략 개 일 것이고, 이 많은 것이 증발되면 그 분자가 전 지구의 대기에 섞일 것이다. 개가 대기에 섞이면 우리나라 상공에 있는 구름 속에는 적어도 수천억 개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구름에서 내린 모든 빗방울 속에는 바로 그 오줌에 있던 물 분자가 적어도 몇 개씩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 그 오줌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한 번 들여 마시는 공기 속에는 2000년 전 예수님의 허파에 들어갔던 바로 그 공기가 적어도 수백 개에서 수천 개는 들어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이 사실을 안다면, 아마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런데 같은 논리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허파에 들어갔던 공기도 그만큼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불교도들도 같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것이 끝은 아니다. 히틀러의 허파에 들어갔던 공기도 그만큼 있다! 이제는 나치 당원들이 감동할까? 아무튼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한 번 들여 마시는 공기 속에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류 크로마뇽인에서 현대인까지, 고조선에서 대한민국까지 모든 인류의 허파에 들어갔던 공기가 다 들어 있을 것이다.

인류가 마셨던 공기만이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공룡의 허파에 들어갔던 공기도 들어 있을 것이고, 소나 돼지, 나무와 풀들이 호흡했던 그 공기 분자들도 다 들어 있을 것이다.

아보가드로수가 이렇게 크다는 것은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너와 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허파에 들어갔던 공기가 1초 후에 너의 허파 속으로 들어가고, 1분 후에 너의 피에 들어가고, 1시간 후에 너의 살에 들어간다. 나의 피와 살이 너의 피와 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지만 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빈민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 내 몸의 일이기도 하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원자적 관점에서 보면 더욱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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