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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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3.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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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티브이를 켠다.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아기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도 모르게 넋을 빼앗긴다. 아기는 한참 옹알이 중이다.

아들도 저때가 있었지. 아득하면서도 어제인 듯 선명한 그림이 펼쳐진다. 아기들은 4개월이 되면서 옹알이를 시작한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지만 그걸 알아듣는 사람은 엄마다. 남이 들으면 아랍어 수준이다. 또한 울음소리로 아기의 상태를 알아차린다. 배가 고픈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인지 소통이 되는 것이다.

아들의 옹알이를 알아듣고 그 말을 통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였다. 그이도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나를 통해서 아들을 이해했다. 통역은 엄마인 나의 특권이었다.

통역은 아들이 말을 배울 때까지만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찰나였다. 유년을 거쳐 청년이 된 지금은 전혀 소용이 없다. 오히려 내가 그 녀석의 통역이 필요할 때가 많다. 물리를 전공하는 아들의 서적은 나에게는 온통 외계어다. 이 언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에게 설명해 주는 아들은 친절한 통역가이다.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이슈가 되었다. 한국인 최초의 상으로 작가인 한강씨는 번역가 데버러스미스에게 공을 돌렸다. 한국어의 미묘한 표현을 적절한 단어로 잘 표현해낸 결과라고 했다. 영어로 표현하기가 힘든 부분이 많았을 텐데 우리의 정서를 잘 이해하여 번역한 실력은 놀랄 만하다.

이렇듯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큰 상을 받기까지는 번역가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영연방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한국에 살아본 경험도 없이 한국어를 배워서 번역을 했다고 한다. 기가 막히게 작품을 쓴들 번역이 부실하면 빛을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작가와 번역가의 마음이 작품 안에서 통했다고 볼 수 있다.



깃털 하나가 허공에서 내려와/ 어깨를 툭! 건드린다./ 내 몸에서 감탄이 깨어난다./ 별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오래된 기억을 건드린다./ 물살을 슬쩍! 일으킨다./ 깃털과 별과/ 나 사이/ 통역이 필요 없다./ 그 의미를 묻지 않아도/ 서로 다 알아들었으니까.



문정희님의 시이다. 이 통역이라는 시를 처음 접하고 사람 사이의 깊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이와 나는 부부로 이십 육년 지기다. 아직도 그이의 말을 못 알아들어 직역이 따라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기의 옹알이를 알아듣는 엄마처럼 통역이 필요가 없을 만도 하건만 도무지 멍한 순간이 있다. 어느 순간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엉키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당황스럽다.

서로에게 통역이 필요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의미를 묻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 사이가 있을까. 이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 붙어 지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소통이 잘 되느냐의 차이지 싶다. 그이와는 언제쯤이면 통역이 필요치 않을 때가 올까. 나에게도 이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꼭 달달한 관계가 아니면 어떠랴. 소박한 친구면 되지 않은가. 나의 단점을 인정해주어 장점으로 승화시켜주는 사람. 상대방의 품위를 지켜줄 줄 아는 사람. 서로를 존경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 봄날의 들판처럼 들떠 쉰의 내 들녘에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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