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불편하다
국수가 불편하다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3.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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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그저 좋은 정도를 넘어 자다가도 국수 이야기만 나오면 벌떡 일어난다고 곧잘 허풍이다. 당연히 밥과 국수 사이에서 선택에 대한 갈등은 없고, 심지어 하루 한 끼를 국수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내가 국수를 좋아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식감이다. 쌀이나 보리 등 낱알이 모여 한 그릇을 이루는 밥과는 달리 길게 이어진 면발이 적당하게 삶아지면서 만들어 내는 부드럽고 쫄깃한 맛은 때때로 황홀하다.

국수가 되기 위해 밀의 낱알을 빻으면서 가루가 되고, 그 가루가 반죽이 되어 한데 어우러지는 과정을 나는 경계의 구분을 허무는 조화의 의미로 여긴다. 커다란 덩어리를 다시 가느다란 국수 가락으로 나누어지도록 만드는 일은 사람들의 편리한 섭식을 위한 나눔이며, 갖가지 식재료를 만나 국물에 말거나 비벼짐으로 인해 다양한 맛을 제공하는 국수는 한마디로 버라이어티 그 자체라고 군침을 흘린다.

그런 국수가 요즈음 자주 불편하다. 국수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의 온갖 국수를 두고 나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간밤에 먹다 남긴 국수조차 자주 내 차지가 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퉁퉁 불어터진 국수마저 좋아하는 경우가 그리 흔할까.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처음과는 다른 맛에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어터진 국수를 먹어치우는 일은 항상 내가 도맡았다. 거기에는 지극히 좋아하는 것과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신 해결해주려는 어린 갸륵함(?) 사이의 갈등이 있다. 어려서는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과는 반대로, 좋아한다는 것을 가장한 나름의 부모님 생각이, 가장이 된 후에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그리하여 퉁퉁 불어터진 국수조차 나 스스로 맛있다는 듯이 먹어야 하는…. 그런 국수가 불편하다.

결국 구속영장이 청구된 자연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 자체가 국민에게 특별하게 불편한 존재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대통령, 파면 이후 구치소에 수감될 가능성이 높아진 나라의 현실이 불편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네 편 내 편 가릴 것 없이.

세 번째 서럽게 울부짖는 봄이 돼서야 비로소 떠오르는 세월호. 그렇게 쉽게 인양될 것을 이 핑계 저 핑계 미뤄왔던 나라도 불편하고, 유해 수습과 철저한 원인 규명 사이 묘하게 줄타기하는 모양새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마냥 기피할 수는 없는 일. 법과 원칙을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청주 청원구의 어느 골목길에는 `담쟁이 국수이야기'라는 조그마한 국숫집에 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등장했던 국수 장인이 재능기부로 국물 맛을 전수했으니 당연히 맛있다. 게다가 가격도 참 착하다.

그 집 벽에는,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는 시가 적혀 있다.

그런 국숫집에 손님이 별로 없다. 장애인을 그저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장애인이 만든 국수를 꺼려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단 몇 명만이 먹게 된 그날 점심.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와 그걸 받아들일 마음이 부족한 보통사람들, 그리고 어느새 대선에 온통 함몰된 사람들 사이의 국수가 참으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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