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의 춘정
안방의 춘정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3.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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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화사한 날에 여기저기 꽃이 피고 싹이 돋고 새가 우는 봄은 그야말로 꿈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이 좋은 계절에 사람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차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봄이 꼭 즐겁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댁이 한창 사랑스런 남편과 떨어진 채, 홀로 맞이하는 봄은 기쁨이라기보다 차라리 고통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옥봉(李玉峰)은 이러한 새댁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리고 있다.

안방의 춘정(閨情)

有約來何晩(유약래하만) 약속은 했건만 오는 게 어찌 이리 늦는지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뜰에 핀 매화 시들려고 하는 때가 되었네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홀연 가지 위에서 까치 소리 들리자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거울보고 공연히 눈썹을 그려 보네


무슨 일로 어딜 간 것일까? 새댁의 남편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아무런 기약 없이 떠난 것이라면, 차라리 아픔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굳은 기약을 분명히 하고 떠났었다.

날짜를 못 박은 것은 아니었지만, 봄에는 돌아오겠다고 한 것이다. 새댁은 그 말을 믿고 겨울의 긴긴밤 독수공방을 참아낼 수 있었다. 어차피 겨울은 안 오리라 생각했기에 초조한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막상 약속의 봄이 오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마당에 처음 꽃이 필 때만 해도 남편이 곧 돌아오리라는 기대감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 조바심은 행복한 조바심이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차츰 고통의 조바심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기를 몇 달, 이윽고 마당에 매화꽃이 지기 시작하였다.

약속의 시간인 봄이 떠날 채비를 하는데도 남편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초조해질 대로 초조해진 새댁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이때 홀연 마당 나뭇가지 위에서 까치 우는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을 이 순간만큼은 꼭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새댁은 얼른 거울 앞으로 가서 연필로 눈썹을 그렸다. 기다리던 남편이 곧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까치 울음은 끝내 믿을 게 못 되었으니, 눈썹을 그린 새댁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봄은 기다림을 더욱 초조하게 만드는 심술궂은 계절이다. 봄 풍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이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으면, 그것은 도리어 속을 박박 긁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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