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
  • 법원 청주 능인정사 주지 스님
  • 승인 2017.03.2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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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법원 <청주 능인정사 주지 스님>

요즘 사람들은 한곳에 가만있지 못하고 항상 어디론가 가고 있다. 늘 바쁘고 허둥대며 쫓기는 사람처럼 보이고,“바뻐”, “정신없어”란 말이 습관처럼 튀어 나오곤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물질이 만연한 현대에 사는 우리는 그저 고요히 존재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과거에 그룹 총수였던 분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란 책을 내서 히트한 일이 있는데, 잠을 잘 시간이 부족해서 차 안이나 출장길의 비행기 안에서 쪽잠으로 피로를 푼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으로 재계 2위의 대기업을 성장시킨 전설적인 인물, 그러나 그렇게 바쁜 삶도 지금까지 유지되지는 못하고 있다. 모두가 한때일 뿐.

부처님 재세시에 꼬살라국을 통치하던 빠세나디 왕도 바빴던 것 같다. 그는 부처님께 “왕에게는 왕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그 일에 성심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분주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빠세나디의 어리석음을 그냥 넘기실 부처님이 아니다. 그래서 왕을 깨우쳐 주기 위해 산의 비유 경(石山經)을 설하시게 된다. 정신없이 바쁜 분들이 꼭 읽어야 할 말씀이다.

(부처님)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믿을 만하고 의지할 만한 첫 번째 사람이 동쪽, 두 번째 사람이 서쪽, 세 번째 사람이 남쪽, 네 번째 사람이 북쪽으로부터 각각 그대에게 와서 “대왕이여,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저는 동쪽에서 왔는데 구름 같은 어마어마한 산이 모든 생명을 짓뭉개면서 이리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방도를 모색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합시다. “대왕이여, 이와 같은 큰 재난이 일어나서 무시무시한 인간의 파멸이 벌어지고, 인간으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졌을 때 그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빠세나디)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큰 재난이 일어나서 무시무시한 인간의 파멸이 벌어지고, 인간으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졌을 때에는 법답게 살고, 올바르게 살고, 선행을 행하고, 공덕을 짓는 것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

“대왕이여, 나는 그대에게 알려 드립니다. 나는 그대에게 고합니다. 대왕이여, 지금 늙음과 죽음이 그대를 향해 맹렬하게 굴러오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늙음과 죽음이 그대를 항해 맹렬하게 굴러오고 있을 때 그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빠세나디 왕은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는 자신이 보유한 권력으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에 법답게 살고, 올바르게 살고, 선행을 하고, 공덕을 짓는 것밖에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수긍했다.

바삐 사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 왕에게 부처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이야기이다.

나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멈춤과 비움의 미덕을 말해주고 싶고 잠시나마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명상이나 좌선을 권한다.

좌선수행이나 기도수행은 공부하는 자는 평범할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어떤 특별한 경계를 만나거나, 크게 깨달아지는 것이 없을 때, 바로 그 평상심의 때가 가장 소중한 수행의 때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수행자는 다만 묵묵히 정진해 갈 뿐 포기하거나, 실망하거나, 진척 없음을 탓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다만 좌복에 앉아 화두를 참구 할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고요한듯하지만 그 고요 속에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치열함이 있다. 바빠 쫓기 듯 사는 현대인들이여!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삶의 나침판을 점검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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